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65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265절

 

좋은 땅에 있는 것, 이들은 좋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굳게 잡아, 인내로 열매 맺는 자들이다.

누가복음 265절 말씀입니다.

‘좋은 땅에 있는 것’ 드디어 좋은 땅이 나왔습니다. 

좋은 땅은 의식의 세계가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변화되는데 의식의 세계는 한계가 있습니다. 

5%밖에 안됩니다. 

무의식의 행동이 95% 나옵니다. 

행동은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의식을 교화시키고 이념으로 말씀을 깨닫게 해도 우리는 안 변합니다. 

무의식의 세계가 변화되어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속에서 올라오는 혈기 등 무의식의 세계가 변화 받아야 열매 맺는 것인데 변화가 잘 안 되는 이유가 무의식을 가르치는 곳이나 무의식을 보여주는 데가 없습니다. 

의식만 보여줍니다. 

사람은 머리만 채워주어도 만족합니다. 

‘음 좋은 말씀이야, 은혜로워’로 예배를 끝냅니다.

 

무의식으로 말씀이 들어가면 일어나는 현상이 애통입니다. 

무의식세계로 말씀이 들어가면 마음이 가난해지고, 자신에 대한 정확한 상이 보입니다. 

‘내가 이렇게 형편없고 부족 하구나’ 

출발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나는 지금 꽤 되었구나, 

나는 신앙이 된 사람이야, 

기도를 10년 하니 신앙이 좋아’ 탈락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기에 말씀이 들어오면, 내가 좋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쁘게 느껴집니다. 

천국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지옥 가는 것처럼 느껴지며 내가 형편없는 사람으로 조명됩니다.

 

내가 조명되어지는 말씀, 내가 깨달아지는 말씀이 참 말씀입니다. 

거짓은 남이 조명됩니다. 

내가 높아집니다. 

참 말씀은 내가 낮아집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애통되고 통회되는 것이 참 말씀입니다. 

좋은 땅은 통회되는 말씀이며, 내가 낮아지는 말씀입니다. 

좋은 땅은 참 말씀이 들어오면 내가 자꾸 낮아집니다. 

나에 대한 자아가 자꾸 깨어집니다.

 

불교인들도 똑같이 기도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목표대로 갑니다. 

‘내가 저 불쌍한 영혼들 전도해야지, 

가족 전도해야지’ 당연히 좋은 모습입니다. 

전도 열정과 뜨거움 생명을 버리고 싶을 정도의 헌신도 합니다. 

불교인과 기독교인의 다른 점은 예수님의 뜻이 들어가는 것의 차이입니다. 

내게 맡겨진 저 불쌍한 영혼들을 향해서 예수님의 뜻에 의해 그 영혼들을 중보기도 합니다. 그 전에는 ‘어떻게 하면 내 가족들을 인도할까?’ 이것은 불교인입니다. 

교는 원래 기독교와 타종교 외에는 없습니다. 영의 세계는 예수님이 들어가냐, 안들어가냐 차이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들어가면 기독교, 예수님이 왕인 종교입니다. 

딴 종교는 예수님이 왕이 아닌 종교밖에 없습니다. 

영적 세계는 이 두 종교밖에 없습니다. 

유교, 불교 다 같습니다. 

예수님이 왕이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뜻에 의해 내가 전도할 대상이 설정되고 중보의 대상과 내용도 설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하는 것은 타종교며 이런 종교의식에 빠지면 안됩니다. 

기독교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왕으로 섬기는 예수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좋은 땅은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예수님 밖에 모르지만 예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내가 행하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도 불교인들이 엄청 많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느니 어떤 음성을 들었다느니 하지만 타종교이며 마귀의 음성인데 착각하는 겁니다. 

직분이 목사, 선교사, 장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뭐합니까? 

그러다가 지옥 갑니다. 

천국은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이 땅에서도 주님이 나의 왕이 되어야 천국이 되는 겁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안 따라가고 자신의 뜻을 따라가면 지옥 가는 겁니다.

 

천국과 지옥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천국이 있는 것인데 예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고, 예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제 설교 들어서 알지만 마음이 안됩니다. 

신앙은 ‘내가 뭘 해야지, 하나님 이렇게 되게 해주세요, 이런 것 주세요’ 

이런 세계가 아닙니다.

  이런 것은 불교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나한테 와 닿는 것, 하나님이 나한테 계획하는 것 그것을 빨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무가 물을 빨아들여야 되는데 흙탕물을 빨아들이면 못 자라는 겁니다. 

물은 예수님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계획이며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 물을 빨아들이면 나무가 자라나는 겁니다. 나무가 열매를 못 맺는 것은 인본적인 일반적인 설교, 배운 것들, 아는 것들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로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받으십시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잖아요. 

성령님을 우리 안에 빨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한다고 장사가 아닙니다. 

기도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것은 타종교입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제자들한테 기도를 안 가르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런데 묘하게 제자들이 어떻게 기도할 지를 예수님께 가르쳐달라고 부탁합니다. 

기도를 오해할 까봐 그러시는 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기도의 세계가 다릅니다. 

그런데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꿈꾸는 기도를 하면 마귀가 틈을 탑니다. 

그 때 들려오는 음성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입니다.

 

어떤 분의 어머니가 수십 년 기도를 하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자신은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지만 마귀를 만납니다. 

영의 세계는 하나님을 가장한 마귀를 만나느냐, 진짜 하나님을 만나느냐 두 개 밖에 없습니다. 진짜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뜻이 전달됩니다.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남들이 이해 못하고 나도 이해 못하는 것이 십자가지만, 이해 못하면 영광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지 못하고, 예측치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이지만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거기에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왜 미혹되느냐? 

이제까지 많은 신앙책들과 설교책들을 읽었는데 그런 것들이 대부분 미혹되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저희 교회는 성경말씀과 제가 강해한 설교내용들 외에는 보시면 안됩니다. 

저의 이 강의가 나오기까지 저는 수천 권 수만 권 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볼 책들이 없습니다. 

다 미혹된 것들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 대부분 지옥 갔습니다. 그 분들에게 신앙 물어 볼 필요 없으며 그 분들의 책들 볼 것 없습니다. 

오직 성경과 바른 해석만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 외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명목사들이나 선교사들 대부분 다 지옥 가고 또한 지옥 갔습니다. 

천국 엄청 어렵습니다. 

영의 세계에서 동물 꼬리가 있으면 지옥 갑니다. 

꼬리는 진짜 내면의 세계입니다. 

내면이 안 보이는데 신앙은 이 내면이 바뀌어야 되는데 잘 안 바뀝니다.

 

‘이들은 좋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어떤 말씀일까요? 

당연히 천국에 이르는 말씀이며, 미혹된 말씀 들으면 안됩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말씀일지라도 ‘좋고 선한 마음으로’ 즉 기본 판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기본 판이 오염되어 있으면 바뀌기가 쉽지 않습니다. 

불교인이 우리 교회 처음 오겠다고 하더라도 마음판의 불교의 때가 사라져야 되기에 말씀을 좀 듣고 와야 됩니다. 

마음판이 공산주의나 불교나 유교나 개인적인 사상이 들어 있는 사람은 말씀이 들어올 때 장애가 됩니다. 

처음 진리의 말씀이 들어올 때 충돌되기에 거부되고 안 바뀝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음판을 개간시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 말씀이 들어가면 마음판에 팍 박힙니다. 

땅을 처음에 삽이나 쟁기로 갑니다. 

땅이 부들부들 만들어지면 씨가 잘 심겨집니다. 마음이 부들부들해지면 말씀이 잘 들어갑니다. 마음이 불교나 세속화 되어있으면 아무리 말씀을 심어도 마음판이 안바뀝니다. 

이 마음판을 가는 작업이 오리엔테이션이며, 몇 번 말씀으로 부드럽게 시키는 겁니다.

 

저희 교회는 오더라도 마음판을 먼저 바꾸고 나서 오셔야 하며, 오더라도 계속 안되면 버립니다. 

마음판이 목사라도 잘 안 바뀝니다. 

목사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이 교만으로 마음판이 굳어 있어 더 잘 안됩니다. 

저희 교회 오신 목사 분도 오죽하면 하나님이 ‘목사 자리에서 내려오라’ 그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천국이 쉬운 것이 아닌데 길이 없습니다.

  교만도 회개가 안되는데 음란은 회개가 더욱 안됩니다. 

그동안 마음판이 굳어 딱딱해졌습니다. 

거의 지옥행입니다.

  수십년 목회 한 목사들이 지옥에 바글바글합니다.

  마음판이 부드러워야 말씀이 들어갑니다.

 

말씀은 성령의 감화된 말씀입니다. 

지식의 말씀이 아닙니다. 

창세기 다 외운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며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성령님의 감동에 의한 내게 필요한 것이 말씀입니다. 

지식은 성경을 달달 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성령님이 내게 임하시고, 내가 성령님의 의해서 말씀에 의해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구원이 쉽지 않습니다.

  머리에만 말씀을 채우고 생각 가운데 암기만 하는 것은 천국에 못 갑니다.

  말씀에 의해 내 마음이 부들부들해지고 겸손하게 말씀을 받는 마음판이 되어야 합니다.

 

‘굳게 잡아’ 말씀을 한 번 들으면 우리는 잘 잊어버립니다. 

흙이 갈려서 다져서 부들부들해지면 씨가 흙 안으로 들어갑니다. 

씨가 내 내면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내 내면세계는 음란한 지, 교만한 지, 분노하는 지, 거짓말하는 지, 탐심 있는지 모릅니다. 참 말씀이 나의 내면 깊은 데로 들어오면 충돌이 일어나면서 나의 죄악들이 비쳐지는 것입니다. 

거울보면 내 얼굴 보고 있으면 ‘내 얼굴이 왜 이렇게 생겼어?’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거울과 같아서 나의 내면이 비쳐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죄악되구나, 내가 이렇게 자기애적인 인생을 살았구나, 

하나님앞에 내가 너무나 부족하구나’ 

이것이 굳게 잡는 것입니다. 

암기가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때 적는 것도 하지 마십시오. 

머리로 들어갑니다.  

 

참말씀이 내면에 들어가 말씀 때문에 괴로워져야 됩니다. 

말씀이 달콤하기보다 말씀이 고통스럽습니다. 성령의 감동의 말씀은 고통스러워서 우리 내면을 깨는 겁니다.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것이 말씀이기에, 말씀 듣고 ‘은혜롭다’라는 말이 잘 안 나옵니다. 

찔리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제 설교는 부드럽지 못하고 신경질적이고 듣기 싫습니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함을 주는 설교가 아닙니다. 

말씀이 우리 죄를 찌르고 우리 자아를 찌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암기하는 것으로 끝내지 마십시오. 

말씀은 나를 찔러서 나를 비춰주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 했구나, 

잘못 살았구나, 

이러면 안되구나, 

내가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말씀입니다. ‘말씀이 참 은혜롭다, 

그래서 그렇구나’하고 머리로 들어가면 가짜입니다.

 

마음은 온갖 감정이 서려 있습니다. 

하지만 머리는 지식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데, 신앙 대단해’ 머리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원하시구나, 하나님이 나한테 화가 나셨구나 어떡하지’입니다. 

머리는 ‘하나님은 좋은 분이야,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셨어, 

나는 천국 가’ 지옥입니다. 

마음에 성령님의 음성이 들어오면 괴로워서 찬양을 부르면 약간 우울하게 보입니다. 

그게 좋은 겁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내가 잘난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고, 얼굴 볼 면목이 없고, 항상 죄송합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인생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해서 내가 벌레만도 못하고 티끌 같아 보이며 한 없이 낮아집니다. 

저도 목사 타이틀이 괴롭고 부끄럽습니다. 

성도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분에게 하나님께서 ‘화목제를 바쳐라’ 

5백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구약도 아닌데 바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분 입장에서는 황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은 며칠 뒤에 화목제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이 나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존립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떠나가면 나는 마음이 아픈데 우리가 모르고 사는 겁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내가 하나님 마음 아프게 한 것이 들어옵니다. 

내 인생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화목제를 바치게 됩니다.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과거지만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그럴께요’ 

하나님 마음 아프게 한 것을 회개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아십니까? 

말씀 속에 하나님마음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말씀에 하나님마음이 있습니다. 

사람도 상대방에게 말을 할 때 ‘나는 너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말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마음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통회안할 수가 없습니다. 

애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도 말을 할 때 A+B=C 공식을 말하지 않고 ‘나는 네가 이러니까 싫고, 

이러니까 마음에 들어’ 마음을 표현하며 감정표현을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그 때 고통을 느끼고 애통이 일어나는 겁니다.

 

수련회 때 은혜 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까? 

심란할 때 기도원가서 은혜 받고 기도하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말씀이 완벽하게 나를 정복시켜야 됩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한번이나 한동안 은혜 받고 끝나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와 나를 정복시켜 나를 익사시키게 해야 합니다.

  자아가 깨지는 것입니다. 

목표, 계획, 모든 소원이 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엎어버리는 것입니다. 

씨 하나가 1년 지나고 2년 10년 지나면 엄청나게 자란 나무가 되어 바위가 깨져 버립니다. 그 씨가 어마어마한 거창한 나무가 되는데 신앙은 내가 정복당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나한테 보여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간인 나를 예수님처럼 만들어내십니다. 

예수님이 손을 얹으면 병이 낫고, 예수님의 입에서는 진리밖에 안 나갑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듣습니다. 

또 다른 예수가 내 안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매입니다. 

또 다른 예수가 나에게 보여집니다. 

남들이 볼 때 내가 나쁜 놈이었는데 ‘어 예수님이네’ 

예수님으로 보여 질 정도로 전혀 새롭게 변하는 것입니다. 

열매는 전혀 새로운 것입니다. 

뿌리나 이파리도 아닌 전혀 새롭습니다. 

전혀 인식할 수 없는 탐스러운 빨간 사과가 열리는 겁니다. 

나무와 사과가 비교됩니까? 

사과는 너무 탐스럽습니다. 

왜? 

예수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또 다른 작은 예수가 만들어지는데 그게 열매입니다.

 

‘인내로 열매 맺는 자들이다’ 

인내는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믿자마자 천국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서 빨라야 1년, 늦으면 40년 정도 걸립니다. 

시간이 지나서 예수님과 같은 모습 같은 능력이 보여 지는 것은 은혜충만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씨가 자라서 1년 지나고 3,4,5년 뒤에 열매가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 예수의 모습이 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예수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한 명의 온전한 크리스챤이 또 다른 열매들을 만들어서 커지는 것입니다.

 

저희교회가 제가 있는 동안에 120개 지교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240개 목표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인 교회와 개인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뭐가 남을까요?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요? 

예수님은 우리의 첫 열매이시며 부활의 첫 열매이시며 우리 모두가 닮아야 할 형상이며 존재이십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예수님의 동생들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으로 바뀌는 겁니다. 

예수님은 죄를 안지으시고 능력이 충만하시고 거짓이 없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하십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실 것입니다. 

바른 신앙생활은 여러분을 또 다른 예수님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참 말씀을 받았습니까? 
여러분도 100%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능력자가 되고, 의인이 되고,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가 됩니다. 
왜냐면 여러분이 또 다른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으십시오. 
예수를 통해 참된 말씀이 들어갈 때 또 다른 열매를 맺기에 예수님은 첫 열매이시며, 우리는 두 번째 세 번째 열매가 됩니다. 
열매는 하나님이 원하는 상입니다. 
예수님처럼 바뀌는 겁니다. 
불교인은 바뀌어도 부처까지지만 
참된 기독교인은 예수님처럼 변화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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