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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359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359절   너희 모든 자 가운데 더 작게 있는 자가 크게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359절 말씀입니다. ‘너희 모든 자 가운데’ 그냥 너희 가운데도 아니고 ‘너희 모든 자 가운데’라고 표현합니다.  여기는 어린아이, 노인, 아픈 자들, 남자, 여자 다 포함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비교할 때 주변인을 비교하는데, 예수님은 ‘너희 모든 자들을’ 하시며 한계를 넓히십니다.  ‘더 작게 있는 자가’ 성도를 말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집사, 안수집사, 장로, 권사, 선교사, 전도사로 직분이 높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도로 있으면 뭔가 신앙이 없어 보여 주눅 듭니다.  회장이나 부회장 직책, 앞에 서기를 좋아하고, 인도하기를 좋아해서 교사 등 무엇인가 맡고 싶어 합니다.  ‘더 작게 있는 자가 크게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올라간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땅에서 크게 인정받고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천국에서는 더 크다는 것입니다.   모든 직책은 영광을 부여 받습니다.  대통령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영광 때문입니다. 목사도 이 땅에서 영광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영광을 받으면 하늘나라 가서는 상급이 상쇄됩니다.  하나님이 은밀한 가운데 계시기에, 우리는 은밀한 가운데 작은 상태에서 무엇인가 해야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티를 내고 싶어 합니다.  목사에게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 영광을 받으면 하늘 보상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은밀하게 기도하고 헌금하고 금식하는 등 은밀함이 진짜 신앙입니다. 사람을 의식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내가 몇 시간씩 기도하는데’ 다 교만입니다.  신앙은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사람을 상대하게 되면 올라가고 싶어 합니다. 내가 안수자가 되고 싶어 하고, 선교사, 전도사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신본주의는 하나님만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나의 신앙의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358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358절 예수님께서 그들 마음의 변론을 보시고, 어린아이를 붙드시고, 자신 곁에 그를 세우셨으며,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358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마음의 변론을 보시고’ 제자들이 변론할 때 멱살을 붙잡고 ‘내가 더 커’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영적수준이 그렇게 낮지도 않습니다. 마음의 변론입니다.  마음가운데 은근히 ‘내가 너보다 낫다,  내가 너보다 큰 자야’ 내세우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붙드시고, 자신 곁에 그를 세우셨으며,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곁에 있는 어린아이를 곁에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자는’ 누가 더 크냐?  누가 더 예수님과 더 가까이 있느냐?  질문 앞에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이 말이 나올까요?  교만한 자들은 어린 아이를 영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걸을 때마다 뒤뚱뒤뚱 걷고 밥 먹을 때도 잘 못 먹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린 아이를 볼 때 영접하지 않고 무시하기 쉽습니다.  배격합니다.  그것도 못하냐?  거듭난 영적 어린 사람들은 취급을 못 받습니다.  그러면 그 어린 아이는 갈 길을 잃어버립니다. 보호를 못 받고 결국 죽게 됩니다.  ‘정말 네가 컸으면 어린 아이를 보살펴야지, 우쭐되거나 높아지려고 하지 말라’ 정말 크다면, 컸다면 어린 아이를 잘 돌보고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어린 영혼들에 대한 수용성입니다.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신기합니다.  분명 믿는 자입니다.  믿는 자지만 어린 아이를 잘 영접하고 수용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겸손할 때만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모든 영적세계는 끝나는 것입니다.  사라집니다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357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357절   그들 중에 변론이 들어갔는데, 곧, 그들 중 누가 더 크냐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357절 말씀입니다. ‘그들 중에 변론이 들어갔는데’ 변론을 하는 겁니다.  변론을 일으키기 위해 누가 조종하는데, 바로 마귀입니다.  대화가운데 무익한 소모적인 말다툼, 힘겨루기 등은 마귀가 합니다.  마귀가 우리 대화 중에 들어와 변론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값어치 있는 것만 해야 됩니다.  쓸데없는 생각과 논쟁, 쓸데없는 대화 다 마귀가 주도합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것을 하지 않고 값어치 있는 것만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옆에서 싸움 걸며 치고 들어오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어둠이 강한 사람과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곧 그들 중 누가 더 크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쓸데없을 뿐 아니라 위험한 변론입니다. 쓸데없는 것은 물거품입니다.  누가 크냐?  사냐, 죽냐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조금 지나면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왕위를 다스린다는 생각의 기초하에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흔들고 겉옷을 펼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제패하시고 많은 지역에서 편을 얻으시고, 종교 수도인 예루살렘만 점령하면 예수님이 드디어 다윗 왕으로 통치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래를 바라보고 꿈꾸고 자릴 차지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미리 생각해야지 그 때 가서 생각하면 이미 다른 이들이 수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굴까요?  야고보와 요한이주동자일 가망성이 큽니다.  어머니가 물주이며 우레 같은 성격인데다 빽이 있는 형제들입니다.  베드로까지 수제자로 있으니 변론이 납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제자들은 당연히 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성경은 반면교사입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를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를 비춥니다.  우리는 나를 잘 모릅니다.  성경에 비추어서 나를 봅니다.  성경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356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356절   그러나 그들은 이 음성을 알지 못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그들에게서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음성에 대하여, 그 분께 묻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누가복음 356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음성을 알지 못했는데’ 귀신들린 간질병 걸린 아들을 둔 아버지의 간구에 의해 아들이 나음 받았습니다.  이 사건 후에 예수님이 뚱딴지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 십자가를 말씀하십니다.  구원받는 과정에서 치료는 직접적인 연결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치료받고, 응답받고, 거듭나고, 성령세례 받고, 은사받고, 이런 내용들은 그 구원의 과정 속에 곁가지들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통과해야만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곁가지들을 구원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구원이 아니라니 이것을 이해를 못합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그들에게서 숨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데 진리가 왜 숨겨질까요?  굉장히 중요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숨겨졌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구원과 멀리 있습니다.  제가 진리를 깨닫는 과정에서 헬라어 번역에 앞서 영어번역을 합니다.  그래도 진리를 모릅니다.  진리를 알게 하는 많은 책들을 봐도 다 가짜였습니다.  진리라고 아는 많은 대형교회들도 가짜입니다. 혹시 영어성경을 번역하면 진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여 영어성경을 번역했지만 딱 하나 깨달은 것은 ‘헬라어 히브리어 원어가 아니면 안되겠다’였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도 문제가 좀 있습니다.  히브리어가 쓰여 질 당시 의미와 현재 히브리어 의미가 다릅니다.  옛날과 30% 바뀌어집니다.  성경에 진리가 있지만, 이 성경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구약성경을 히브리어로 들어간다 할지라도 이미 바뀐 의미로 우리는 이해합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