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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21절강해

 누가복음6장 221절   죽은 자가 일어나 앉았으며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이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21절 말씀입니다. ‘죽은 자가 일어나 앉았으며’ 관을 메고 가고 있는데 예수님이 관을 만지셨습니다.  관을 향하여 ‘청년아 내가 네가 명령하노니 일어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청년이 일어선 것입니다.  죽은 자가 갑자기 일어나니 사람들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때 관을 내려놓았을 것입니다.  청년이 일어나 앉아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말을 했을까요?  사후세계? 사후세계를 말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나사로도 3일 만에 살아났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일장인데, 너무 마음이 안타까워서 당일 좀 지나게 장례를 늦게 치루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후세계가 있지만 바울도 그렇고 구약에도 사후세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사후세계를 말할 때 우리의 감각이 섞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경험에 의해서 보는 영이 다르고 느낌이 다릅니다.  그래서 진리가 아니기에 말을 안하는 겁니다. 청년이 말을 한다는 것은 뇌가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뇌의 가장 중심인 시상하부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살아도 말을 못하면 뇌사입니다.  움직이고 보고 듣고 말을 하는 완전한 소생이 일어난 겁니다.  예수님의 살리심은 부분적이 아니라 완전한 살리심입니다. ‘그 분이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청년의 손을 잡고 그의 어머니에게 인계한 겁니다.  왜일까요? 이 아들이 과부의 전부인데 선물로 다시 받은 겁니다.  어머니 신앙 때문에 아들이 일어난 것이고, 어머니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음에도 얻은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우리가 소원을 기도하지 않아도 이루어 주십니다.  소원성취는 분명히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도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소원성취기도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아시기에 가장 원하는 아들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함이라는 것이 다 있습니다.  하지만 원함을 얻고자 하나님께나아갈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20절강해

누가복음6장 220절   그리고 나아오셔서, 관을 만지셨습니다.  그러자 메고 있는 자들이 섰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네게 말하는데, 일어나라.” 누가복음 220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아오셔서’ ‘나아오다’는 가까이 앞으로 오는 것을 말합니다.  관 쪽으로 가까이 나아오셨습니다.  ‘관을 만지셨습니다’  관 채로 묻기에 안에 시체가 있고 관 뚜껑이 닫혀 있습니다.  관을 만질 필요가 있을까요?  시체를 만진 것은 아니고 관만을 만집니다.  율법적으로도 시체를 만지면 부정되기에 못 만지게 되어 있습니다.  관을 안 만져도 예수님의 능력은 나타납니 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접촉은 사랑표현입니다.  우리도 이뻐하면 머리를 쓰다듬고 스킨쉽을 합니다.  예수님도 사랑의 표시로 우리에게 접촉을 합니다.  하지만 시체를 못 만지니 관을 만진 것입니다. 청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표현입니다.  이미 육과 영은 죽었습니다.  죽은 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영화 보면 사랑하기에 시체에 키스를 하기 도 합니다. 우리가 왜 구원받느냐?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도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청년을 왜 사랑하느냐?  어머니의 믿음 때문입니다.  엘리야도 죽은 외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 때문에 죽은 아들을 살리는 사건이 나옵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엄밀히말하면 또 다른 관계된 자의 사랑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께 사랑받으면 날 통해 다른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장소가 교회고 살리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목사를 통해 다른 성도의 질병을 고쳐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그 아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죽은 자가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19절강해

누가복음6장 219절   주님께서 그녀를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셨으며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누가복음 219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때는 ‘예수님’이라 표현하고, 어떤 때는 ‘주님’이라 표현합니다.  나인성의 과부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었다 는 것입니다.  ‘그녀를 보시고’ 자기를 믿는 자입니다.  ‘그녀를 불쌍히 여기셨으며’ 하나님은 지옥 가는 사람을 절대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녀만 불쌍히 여기십니다.  지옥가는 사람은 이미 진노가운데 심판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엄청난 긍휼이 있고, 아닌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분노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하나입니다.  공의와사랑이 양 날개로 작용합니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다. 자녀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자녀입니다.  반대로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순종은 자녀, 불순종은 자녀가 아닌 것이 양 날개의 원리입니다.  불순종은 지옥의 자녀입니다.  불순종이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임을 아셔야 되는데,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아무리 울고 난리를 쳐도 불순종은 무조건 지옥입니다.  자녀가 아니며 진노의 대상입니다. 저희 교회는 불순종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이 나갈 때 불순종하며 버틸 때 쫓아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를 몇 십년 다니고 직분이 어떻고 또 뜨거운 신앙생활 할지라도 상관 안합니다.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은 버립니다. 절대순종이 믿음입니다.  순종이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연락하고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관계지만, 하나님은 아무 관계를 이어나갈 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종의 끈만 연결됩니다.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헌신하고 기도나 직분도끈이 아닙니다.  순종할 때만 끈이 유지되고 불순종하면 끈이 끊어집니다.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18절강해

누가복음6장 218절   그 분이 성의 문에 가까워지자,  오호, 죽은 자가 메어져 나오는데, 과부인 어머니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여러 성의 군중도 그녀와 함께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18절 말씀입니다. ‘그 분이’ 예수님입니다.  ‘성의 문에’ 과거에는 항상 부족 간 싸우기에 성벽을 쌓고, 그리고 출입성문을 만들고, 싸우기 위해 성위에 높은 첨탑을 세워 누가 오나 안 오나 살핍니다.  이런 성이 작게는 개인성이 있고, 마을을 형성하는 성이 있습니다. 이 성은 산과 들 위에 안전하게 있으며 마을을 떠나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돈 많은 사람은 성안에 살고, 없는 사람은 마을에 살기도 합니다.  이런 성과 동네로 구분 되어 있습니다.  성 밖의 일반 마을은 외부 침략에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성 의 문에 가까워지자, 오호, 죽은 자가 메어져 나오는데’ 장례식에서 죽은 관이 올 수 있고 죽은 시신을 무덤으로 옮겨져 가는 장례행렬일 것입니다. ‘과부인 어머니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죽은 자는 과부의 외아들입니다.  과부의 외아들이 죽으면 하늘이 무너져 내립니다. 남편이 없어 장성한 외아들을 유일하게 남편처럼 의지하는 존재입니다.  삶의 전부였습니다.  ‘여러 성의 군중도 그녀와 함께 하였습니다’  나인 성 뿐만 아니라 다른 성들의 군중도 함께 합니다.  장례식은 이스라엘의 최고 큰 행사입니다. 두 번째가 결혼식 행사입니다.  그 사람의 돈의 유무와 권력의 유무는 죽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아들의 죽음인데 여러 성의 군중이 께 할 정도이면 엄청난 거부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따릅니다.  고위 공무원, 친척관계들이 따르는데 요인이 작용합니다.  과부는 모든 면에서 재력이라든지 인간관계, 권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과부니 아마재력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죽는데 돈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돈은 행복에 거의 영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돈이 행복을 준다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행복은 관계에서 옵니다.  혈기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17절강해

 누가복음6장 217절   다음에, 그 분은 나인이라 불리는 성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그 분의 여러 제자들과 많은 군중이 그 분과 동행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17절 말씀입니다. ‘다음에’ 지금 백부장의 종을 고친 다음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명성이 올라가서 누구든지 그곳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분은 나인이라 불리는 성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또 다른 성으로 이동하십니다.  물론 나인성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게 되지만, 예수님의 행보는 한 곳에서 무엇을 누리고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데 관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역자들이 가장 위험한 일이 사역을 해서 큰일을 하게 되면 안주하게 됩니다.  돈과 인정과 명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것들은 자신을 죽이기에 그것을 버리고 또 다른 곳에서 개척을 하십니다.  다음 사건을 기다립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다른 사건을 기다려야 됩니다. 그러면 또 기적이 나타납니다. 만일 예수님이 좀 더 머무르시다보면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시간은 돈이며 금이며 지혜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천국의 상급을 쌓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시간 활용을 잘 하신 것입니다.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준 다음 움 직이시는데 이 움직임이 굉장한 지혜입니다.  인간은 다 영광 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절제하고 포기할 줄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잘 되다가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결국 영광만 받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맨 마지막이 비참해집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주신 미션을 생각하며 안주하지 않고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뭘 얻으면 ‘됐다’하면 안됩니다. 저희는 마태복음 출판, 누가복음 출판, 그리고 마가복음, 요한복음 계속 나올 것입니다.  구약도 히브리어 번역이 곧 나올것입니다.  나중에 성경전체가 완성될 것입니다.  불에 타지 않는 영구적인 성경책이 나올 것입니다.  그 뒤로도 끝나는 것이아니라 새로운 계획이 나옵니다.  끝났다가 아닙니다.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16절강해

 누가복음 6장216절   보내어진 자들이 집으로 돌아가, 병들은 종이 건강해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16절 말씀입니다. ‘보내어진 자들이’ 보내어진 자들이 두 파트입니다.  회당에서 가르치는 자들인 유대장로들을 처음에 보내서 예수님께 와달라고 했으며, 두 번째는 예수님이 오시면서 백부장의 집과 5리쯤 떨어진 상황에서 친구들을 보내어 오시지 말라 고 합니다. ‘이런 믿음 처음 보았다’하시고 예수님이 칭찬하시지만 ‘종아 나아라’하는 기도를 하시지 않습니다. 백부장은 분명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셔야 되는데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 하실 때 종이 나아버립니다. 우리가 축사나 신유할 때 ‘나가라, 나가’하는 명령이나 선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 안에서 뭔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보통 액션이나 행동이나 말을 중요시 합니다.  하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분도 손을 얹었는데 장기들을 잡는 세력이 있어 장기들이 안 좋은 상태였습니다.  ‘나아라’ 선포하지 않았지만 한 주 지나고 나서 안수할 때 보니 괜찮아졌습니다.  영적인 어둠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치유가 3개월 걸릴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너는 치료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이제까지 지은 죄를 회개하라’ 말 씀하셨습니다.  행위죄는 많지 않지만 마음으로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유는 보통 그냥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나아 있고 좋아집니다.  그 어느 순간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순간입니다.  ‘이런 믿음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예수님이 평가를 내리는 순간이 치료의 순간이 된 것입니다.  치료는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은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고 다가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시는데 움직인 표현이 ‘백부 장 너의 믿음이 놀랍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모든 일들은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