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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27절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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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홈피사이트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27절 그 분은 그들의 생각들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모든 왕국이 황폐해진다.  집대 집은 무너진다. 누가복음 427절 말씀입니다.   ‘그 분은 그들의 생각들을 아시고’ 그들의 어떤 생각들을 아셨을까요?  벙어리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내셔서 벙어리가 나으니까 사람들이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며 예수님을 자기들쪽이 아니고 귀신쪽으로 몰아넣습니다.  ‘하나님쪽이라면 하나님쪽이라는 증거를 보여줘 그러면 믿을께’ 예수님의 행하심을 보고 너는 내가 믿는 하나님쪽이 아니고 귀신쪽이라고 불신하는 생각들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몇 마디 들어보시고 그 말 뒤의 각각의 생각이 미혹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참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다 ‘아멘’ 하지 않습니다.  ‘너 귀신이야 거짓이야’ 반항합니다. 그 거짓된 생각들을 뒤집을 만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귀신론이지만 사실 동시에 귀신론속에 모든 신앙사상들을 집대성해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특히 귀신론을 정확히 규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적이 일어나면 귀신쪽인지 하나님 것인지, 찬양을 해도 말씀을 전해도 귀신 것인지 하나님 것인지 어렵잖아요?  그래서 귀신론은 진리와 비진리를 규정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입니다.  귀신론 자체를 어떤 이론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영분별에 대한 체크를 할 수 있습니다.  영적분별력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지옥 보낸다고 하십니다.  그 사람이 하는 것은 귀신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귀신인지 하나님인지 정확히 읽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미혹됩니다.  누가 예언하는데 그 사람이 지옥 간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그 사람이 귀신에 의해 예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언이건 치료, 계시건 참성령님에게서 왔는지가 중요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반론이 시작되는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28절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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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홈피사이트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28절 만약 사단이 스스로 분쟁한다면, 어떻게 그의 왕국이 서겠느냐?  내가 바알세불 안에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으로 너희가 말한다. 누가복음 428절 말씀입니다. ‘만약 사단이 스스로 분쟁한다면, 어떻게 그의 왕국이 서겠느냐?’  우리가 축사를 이해할 때 줄을 서서 안수 받고 쓰러지는 것으로 생각하니 이런 말씀들이 이해가 안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축사 대부분은 퇴마기도입니다.  카톨릭의 축귀기도처럼 진짜가 아닙니다.  진짜가 아닌 것을 연상하며 말씀을 보니까 귀신론에서 혼동이 오는 겁니다.  안수했는데 쓰러지는 것은 퇴마가 아닌데 증거가 그들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귀신이 나가면 죄가 끊어지고 행복해지고 얼굴이 훤해집니다.  축사는 성령의 역사의 연장입니다.  손을 얹으면 애통이 나오면서 회개가 나오고 하나님 앞에 성령의 은혜가 쏟아집니다.  이런 은혜가 나간 다음에 귀신이 나가는 건데 모르고 손만 얹으면 넘어지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은혜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감동이 오고 뜨거움이 옵니다. 본질인 그것이 없이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은 귀신의 장난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언제 경험합니까?  은혜 받아야 되는데 은혜를 받으면 감동이 오고 애통이 오고 눈물이 오고 성령의 말씀이 옵니다.  영적인 전율이 옵니다.  이것에 축사의 모드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혹입니다.  속는 겁니다.  현재 개신교의 축사의 자체 정의가 잘못되었습니다.  손을 얹었는데 성령의 감동이 임해서 귀신이 나가는 축사기도가 바른 것입니다.  현대는 축사기도가 오염되었습니다. 인간의 손이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성령님이 축사의 원조이십니다.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파워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주체입니다.   ‘내가 바알세불 안에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으로 너희가 말한다’  성령님의 능력이 중요하기에 성령의 감동이 강하게 임해서 눈물 콧물 애통이 다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29절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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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홈피사이트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29절 만약 내가 바알세불 안에서 귀신들을 쫓아낸다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 안에서 쫓아내느냐?  이러므로 너희 재판관들이 될 것이다. 누가복음 429절 말씀입니다. ‘만약 내가 바알세불 안에서 귀신들을 쫓아낸다면’ 지금 공격받습니다.  벙어리 귀신 들린 사람의 귀신을 쫓아내니까 벙어리가 낫습니다.  너무 놀라고 충격적이니까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방어를 하십니다.  ‘너희 아들들은 누구 안에서 쫓아내느냐?’  ‘너희 아들들은’ 앞으로 기독교는 계속되니까 앞으로 계속 있을 축사현상에 대해서 말하는 겁니다.  ‘이러므로 너희 재판관들이 될 것이다’ 앞으로 축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축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축사가 많이 일어날 텐데 그들도 미혹되어서 축사하겠느냐?  이것은 앞으로 있을 기독교 축사현상에서 아니라는 것을 같이 뭉쳐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축사는 예수님, 그리고 사도들도 했고 지금도 합니다.  계속 있을 축사들은 예수님과 한편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님 저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냅둬라고 합니다. 그들은 물론 예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축사현상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아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쫓아냅니다.   축사의 근본적인 요인은 성령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있어야만 쫓아낼 수 있습니다.  축사는 귀신과 한편이 되어서는 쫓아낼 수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퇴마기도가 있습니다.  축사는 아닙니다.  무당들이 굿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지만 안된다는 것입니다.  귀신 세계 속에서 폼만 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축사는 진짜 귀신이 나가는 것이며, 불신의 세계에서의 축사는 폼만 잡는 퇴마기도며 카톨릭의 축귀성사와 같습니다.  귀신이 안 나갔는데 스스로 인정합니다.  안됩니다.  축사는 진짜 우리에게 붙은 귀신이나 우리 안에 있는 귀신이 실제로 성령의 능력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증명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30절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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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홈피사이트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30절 내가 만약 하나님의 손가락 안에서 귀신들을 쫓아낸다면, 이미 너희에게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였다. 누가복음 430절 말씀입니다. ‘내가 만약’ 예수님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의 손가락 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손가락이 없으십니다. 손가락은 성령님을 말합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본체는 예수님, 손가락은 성령님으로 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십니다.  안보이시기에 우리가 만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은 만져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만질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가 직접 교통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볼 수는 있지만 예수님은 훨씬 어렵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만질 수 없는 분이십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나오질 않아요.  하나님께서는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은 성령님이시며 손가락은 일을 합니다.  거듭남도 성령님으로 거듭나고, 믿음도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지고, 천국 가는 모든 길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기에 성령님은 일하시는 분, 실제 교회에서는 성령님이 일하십니다.  목사를 세우시고 은사자를 세우시고, 일꾼들, 구제자, 긍휼히 여기는 자, 다스리는 자를 세우셔서 교회에서 성령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들은 성령님이 우리에게 시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하게 됩니다.  제가 성경을 번역하는 것, 강해, 칼럼, 다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손가락으로 말미암아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가락은 성령님의 은혜가운데, 능력 안에서를 말합니다.   ‘귀신들을 쫓아낸다면’ 귀신은 인간의 힘으로 쫓아내지 못하고 성령의 은혜만으로 가능합니다.  ‘이미 너희에게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였다’ 하나님의 왕국이 우리에게 임하는 방법은 귀신을 쫓아내면서 이루어집니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31절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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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교회 👈홈피사이트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31절 강한 자가 무장하고 자신의 뜰을 지킬 땐, 그의 소유하는 것들은 평안히 있다.  그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이기면, 의지했던 그의 전신 갑주를 빼앗으며 그의 재물들을 나눈다. 누가복음 431절 말씀입니다. ‘강한 자가 무장하고 자신의 뜰을 지킬 땐’ 강한 자는 누구일까요?  비교적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영보다 귀신의 영이 더 강한 자입니다.  인간이 왜 죄를 짓고 타락하는가?  인간은 창조시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타락했다 할지라도 의를 추구하고 선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영입니다.  인간의 영 자체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에 선을 추구합니다.  아담의 타락이후로 인간의 영은 오염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인간의 영은 악한 것이 아닙니다.  악한 영은 귀신의 영이며 더러운 영입니다.  인간의 영보다 귀신의 영이 훨씬 더 강하기에 강한 자는 귀신의 영입니다.  뜰은 우리 몸, 우리 육체를 말합니다. 귀신이 우리에게서 활동을 가지고 주관자로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관자는 귀신의 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의 소유하는 것들은 평안히 있다’ 귀신의 영이 지배하면 모든 것이 귀신에 의해 안전하게 지켜집니다.  악한 어둠의 성으로써 안전적으로 지켜집니다.  마녀가 지키는 성이 굳건하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평안함인데 육신적인 평안함이 아니라 견고한 성을 말합니다.  ‘그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귀신보다 더 강한 자는 성령님이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누가 이깁니까? ‘그를 이기면’ 귀신을 제압하거나 추방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자기의 영과 귀신의 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이 내주하시면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어둠의 귀신이 슬슬 쫓겨나집니다.  점점 평안해지고 행복해지며 또 다른 세계가 옵니다.  죄가 끊어지고 죄가 싫어집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어둠의 마녀, 마왕을 추방하기 때문입니다.   ‘의지했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32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32절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자는 내게 적대적인 것이며,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것이다. 누가복음 432절 말씀입니다.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자는 내게 적대적인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을까요?  실제가 아니고 가상이기에 어렵습니다.  우리는 가상으로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기쁨과 행복으로 찬양도 ‘내 마음속에’♫ 부릅니다.  예수님이 늘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거기 우리 영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함께 있지 않은 자는 적대적인 것이다. 귀신과 예수님은 적대적입니다.  귀신은 적군입니다.  마귀와 싸우는 것도 마귀가 적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으면 귀신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귀신의 통치가운데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통치가운데 있습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내가 어디 있느냐? 입니다.   저번 주에 심방을 가서 손을 얹었는데 그러자 그 분이 기도하러 다니는 교회가 눈에 보이고 교회 창문이 닫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기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성도님도 3일 동안 너무 기도가 안되서 힘들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쓰러져서 저희가 안수했는데 다리 밑에 귀신이 붙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 우리에게 귀신이 들어오고 붙습니까?  귀신은 돌아다니다가 우리가 귀신의 말에 순종하면 우리 몸에 붙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우리 몸에 들어오는데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을 때 내가 어둠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어느 편에 가담하게 됩니다.  우리 영적상태가 중간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항상 어느 편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나중에 저의 설교말씀을 듣고 행복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살짝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은 때는 귀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