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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4장157절강해

 누가복음 4장157절 레위가 그의 집에서 그 분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으며, 군중이 있었는데, 많은 세리들 및 그들과 함께 앉아있던 다른 자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7절 말씀입니다. ‘레위가’ 마태입니다.  ‘그의 집에서’ 레위가 자기 직업을 끝내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부자라서 그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분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으며’ 내가 잔치를 베풀면 사람들이 많이 오게 해서 내가 주인공이 됩니다.  하지만 레위는 많은 돈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베풀었습니다.  ‘군중이 있었는데’ 예수님을 보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냥 단지 몇 명이 아니라 수십 명, 수백 명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비용이 엄청 듭니다. ‘많은 세리들 및’ 자기가 세리였었기에 동료들을 초청을 합니다.  ‘그들과 함께 앉아 있던 다른 자들이었습니다’ 세리하면서 돈을 위해 살았고 자기의 부유함을 위해 살았기에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초청했지만 이유는 한가지! 예수님을 위해 베풀었습니다.  왜 잔치를 크게 베풀었을까요?  돈을 위해살았고 죄를 함부로 지으며 살았고 또 백성들이 미워하는 로마를 위해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만나보니 내가 잘못 살았구나, 이게 아니구나,  나처럼 죄악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해 초청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다른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직장을 집어치우는 것도 아닙니다.  내 마음을 예수님을 향해 모드로 바꾸는데 내가 받은 은혜가 크니까 남들도 나같은 자리에 초청해 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가 과거잘못된 삶을 살 아왔을 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배의 장을 여는 곳입니다.  ‘나도 예전에 잘못된 삶을 살았어,  너희도 우리와 같이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자’ 하는 겁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목사나 전도사가 아니고 예수님이십니다.  이제 내가바르게 예수님 앞에서 살아왔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4장156절강해

 누가복음 4장156절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그 분을 따랐습니다. 누가복음 156절 말씀입니다. ‘그는’ 마태이며 레위인데 세리입니다.  로마로부터 세금을 부여받고 세금을 징수해서 로마에 바치는 일을합니다.  그 중간에 이익이 크기에 부자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가난했지만 마태는 부자였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무엇을 버렸을까요? 직업을 통한 돈입니다.  우리는 돈이라는 목적하에 직업을 형성합니다. 레위가 직업을 버린다는 것은 돈을버린 것인데, 우리가 돈을 버리지 않고는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갈 수 없습니다.  ‘내가 목사가 되어 돈을 벌 거야’ 이것은 돈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목사들이 다 가난했습니다.  요즘은 목사가 되면 돈이 되니까 목사가 많이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돈을 버린 것입니다. 또 사람을 버려야 되며 명예를 버려야 합니다. 사람을 버리는 것이 명예를 버리는 것입니다. 명예를 버린다하면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명예를 좇는 것입니다.  사람을 좋아하면 예수님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이단소릴 듣기 싫어서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명예욕입니다.  예수님 따라가다 보면 이단이란 소릴 듣기도하고 배척을 받기도하고 모욕을 당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사람을 얻어 보겠다고 부흥을 꿈꿉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현장에서는 원래 부흥이 없습니다.  초대교회 때 몇 천 명은 진짜부흥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개척할 때 교회를 몇 명으로 세우고 이동하였습니다.  초대교회도 부흥이 없었습니다.  바울도 인기가 없는 람이라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사람을 버리는 것이며 명예를 버리는 것입니다.  명예는 인정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엄청난 명예욕이 있어서 안 좋은 평가받으면 ‘내가 누군데’하며 열 받습니다.  저희 교회 오면 명예욕 떨어집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하는 말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만 인정받으려 하는 마음만 남아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4장155절강해

 누가복음 4장155절 이후에, 그 분은 나가셨으며, 레위라 이름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셨으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누가복음 155절 말씀입니다. ‘이후에’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완전히 일으키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이후에 말합니다.  ‘그 분은 나가셨으며’ 중풍병자를 일으키신 그 집에서 나갔습니다.  그 집은 기와로된 큰 집이었으며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신 집입니다.  ‘레위라 이름하는 세리가’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가 레위이며,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셨으며’ 세관은 세무서며 로마가 개인당 세금을 거두는것을 세리가 대신 합니다.  그 때는 점포처럼 길거리에 세리가 앉아서 세금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는 중에 레위를 보시고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셨으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아주 황당한 내용입니다.  베드로처럼 평소에 따라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설교에 참석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고위직 공무원에 해당하는 직업이며 일을 하는 시간이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너무 납득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물론 마태가 자신이 죄인이라고 아는 상태였을 것이며, 갈등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병이 난 상태나 혼란스런 상태도 아닌 가정도 문제가 없는 아주 멀쩡한 상태입니다. 근데 ‘나를 따라라’ 이런 황당한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당황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명령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나 천국 가는 사람은 어떤 명령이 주어져도 그 명령 앞에 무조건 오케이, 예스 하는 것입니다.  지옥 갈 사람은 명령이 주어지면 ‘처자식은요? 직업은요?  많이 본적도 없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수입은 보장됩니까?  세리가 좋은 직업인데 이런 수입이 나옵니까?’ 하고 머리가 돌아갑니다.  하지만 천국 갈 사람은 그 말씀 앞에 ‘아멘!’ 합니다.  선교사 임무도 평생을 생각을 안해봐서 당황스럽지만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납득이 안되는 세상으로 인도해 주시는데, 납득이 안되도 ‘나를 따라라’ 제자로서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4장154절강해

 누가복음4장 154절 모든 자들이 놀라움을 받았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으며, 두려움에 가득찼는데, 말하길 “우리가 오늘 영광스런 일들을 보았다.” 누가복음 154절 말씀입니다. ‘모든 자들이 놀라움을 받았으며’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수십년 누워있는중풍병자에게 걸어가라 명령하니 즉시 일어나 자기 침대를 들고 걸어갑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증상개선이 있어도 자기 침대를 들 정도로 완전 건강하게 낫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워낙 능력이 많으시니까 주변에서 곧바로 놀라움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렸으며’ 중풍병자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보는 모든 자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문화가 참 좋습니다. 교회에서 설교할 때 ‘목사님 설교 잘해’ 이런 것은 나쁘다기보다 썩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주셨구나’ 이런 말이 훨씬 낫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필요한 말씀을 주시는데, 누구를 세워서 인도자를 통해 할 수있도록 도와주시 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개인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권세와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장이 이사를 시켜서 나한테 일을 시키는데 사장을 안 따라가고 이사를 따라간다면 우상숭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장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이 회사입니다. 참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어른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것이기에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중풍병자가 못 들어갈 정도로 둘러앉은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에게 집중하지 말고, 말씀에 집중하고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에 집중해야 됩니다. ‘두려움에 가득찼는데’ 이 두려움은 그냥 무서움이 아니라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이 임재 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임재 할 때 경외심이 있고 간절함이 있고 두려움과 놀라움,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총체적인 표현으로 두려움으로 표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 할 때 경건한 두려움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