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03절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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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03절 

예수님께서 받아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그를 벗기고 매들을 가하고, 반쯤 죽어 있는 것을 버리고 갔다.

누가복음 403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아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연히 율법사에게서 터져 나온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은 이웃이 되겠느냐가 아니라 누가 내 이웃이냐고 자기가 이웃에게 잘해준 것을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을 때 예수님이 그래 네 옆의 사람들이야 말씀하시면 의기양양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예수님이 잽싸게 받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상황일까요? 

비유일까요? 

실제 상황을 비유로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예루살렘은 종교적인 도시며, 성전에 있으며, 많은 영적인 것이 누적된 도시입니다. 

여리고는 역사적으로 입문적인 상가가 발달되었으며 북경의 수도 ‘상하이’ 그런 개념입니다. 

아주 번성한 도시입니다. 

금융이 있고 쇼핑타운이 있고 사람이 살기 좋은 문화적인 도시입니다. 이 사람은 영적인 삶에서 육적인 삶으로 돌아선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올라가는 것은 신앙이 좋아지는 것이며 내려가는 것은 신앙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신앙이 좋았다가 내려가는 겁니다.

 

‘강도들을 만났는데’ 강도는 우리에게 돈을 빼앗습니다. 

마귀는 도적이며 강도입니다. 

귀신들은 우리 영적인 것을 허물어버립니다. 

믿음을 허물어버리고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을 주고 우리에게 온갖 죄를 짓게 만듭니다. 

영혼의 강도가 마귀인데 마귀는 우리의 영혼의 건강을 해칩니다. 

우리의 영적인 것을 다 앗아버립니다. 심지어 우리의 영의 생명마저 위협받습니다. 

사자가 오면 우리는 죽습니다. 

영적인 곤충한테 물립니다. 

영적인 고통을 당합니다. 

다 강도들입니다. 

수많은 강도들이 영적세계에서 가득 차 있는 것이 영적인 현실입니다. 

사마리아 이 비유를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이해하니 ‘구제’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되는 겁니다. 

이웃사랑이 인간적인 친분으로 압니다. 

인간적인 친분과 인간적으로 잘해주는 것이 이웃사랑으로 생각합니다. 

율법사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좀 주는 것, 좋은 관계성 맺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화 안내고 잘 대해주는 것이 이웃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인본입니다. 

영적으로 굉장히 안 좋아지는 사람에 대한 정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으로서의 태도입니다. 

그렇게 이해하지 않고 모여서 기부하거나 엔지니어 활동하고 이해합니다. 과연 예수님이 그런 일반적인 내용으로 쓰셨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 해석법이 있습니다. 

영적인 것으로 해석해야만 이웃사랑의 정확한 개념이 잡힙니다.

 

‘그들이 그를 벗기고’ 옷을 벗는 것은 구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적으로  옷이 있는데 구원을 잃어버리면 영적으로 옷이 완전히 벗겨집니다.

 벗겨지는 단계가 있는데 팔만 벗겨지는 단계, 어깨만 벗겨지는 단계, 다리만 벗겨지는 단계 등이 있는데 완전히 벗겨지면 구원상실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 하다가 은혜생활 하다가 구원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다 벌거벗겨집니다.

 옷을 입고 몸을 씻는 것은 똑같습니다. 몸을 씻는 것은 성결을 의미하며 구원을 의미하며 반대로 벌거벗는 것은 구원상실을 말합니다.

 

‘매들을 가하고’ 구원을 잃어버리면 이 땅에서도 마귀에게 종노릇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노예생활 할 때 맞으며 벽돌을 구웠습니다. 

이것이 이집트 노예문화입니다. 

현재 이집트의 많은 문명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학대에 의해 430년간 이루어낸 막노동입니다. 

매들을 가합니다. 

이집트는 불신지역입니다. 

마귀나라 들어간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나라 들어가면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나라 들어왔기에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나라는 온통 혼돈과 허무와 슬픔과 외로움과 고독과 아픔이 넘치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 있다가 구원상실 되어 마귀나라 가면 정신 착란이 올 정도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인간의 최고 고통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며 먹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체제도 아닙니다. 

정치가 좋아진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고통이 최고의 고통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몽땅 잃어버립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직도 모르는 것입니다. 

정치를 논하는 사람은 다 지옥 가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기독교 전파 때문에 로마감옥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항거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로마 감옥에서 주는 고통보다 주님이 주시는 그 기쁨이 훨씬 강력하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정치가 중요하다고 하는 목사는 정신이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주님 안에 있으면 항상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안정됩니다. 

정치나 경제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안에 있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기에 사도바울도 감옥에서 ‘주안에서 기뻐하고 기뻐하라’ 쓸 정도가 된 것입니다. 

지금 구원을 잃어버리면 계속 매를 맞으니까 돌파구로 다른 것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사실 마귀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인데 정치 경제 바꾼다고 좋아지지 않습니다. 

무엇을 바꾸어도 인생은 행복이 없습니다. 

부인 바꾸어도 남편 바꾸어도 좋아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잃어버리고 지옥 가는 마귀 곁에 있으면 인생이 그렇게 고통스러울수 밖에 없습니다. 

지옥가면 음부에서 마귀들이 죽입니다. 

눈을 잘라내고 혀를 자르고 칼로 찌르고 쇠고랑이로 채워서 불에 던집니다. 그 극심한 고통은 이 땅에서 없어도 그 그림자로 매를 맞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우리가 매 맞고 살아갑니다. 

매 맞을 때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이 사람은 구원을 잃어버리고 마귀에게 고통 받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매들을 가하고, 반쯤 죽어 있는 것을 버리고 갔다’ 구원상실 위협을 당한 겁니다. 

죽지는 않았습니다. 

놔두면 죽는 것입니다. 

언제 죽느냐? 

하루 있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구원상실에서 맨 끝에 있는 상황입니다. 

이때는 살긴 살고 있습니다. 

신전도사님도 제주도에서 저한테 올라왔을 때 간신히 살아 있으니 구원받고 회복된 것입니다.

 죽으면 오지도 않습니다.

 영이 죽으면 절대 교회나 말씀 찾지 않습니다. 

영이 조금 살아 있으니 구원받으려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지금 얼마나 맞았는지 죽을 정도로 맞은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죽을 정도로 맞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살 합니다. 

너무 맞다보니 고통스러워서 자살은 힘드니까 안락사로 갑니다.

 

영적으로 마귀에게 맞으면 영이 죽어버립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자가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율법사의 질문에 답을 주신 것입니다. ‘네 이웃은 이런 자이다’ 이해되십니까? 

아가페나 이웃사랑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주변에 사람들에게 인사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보는 것입니다. 

신적인 사랑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전파를 의미합니다. 복음전파는 이웃사랑의 놀라운 방법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웃사랑은 친하거나 유대관계 아닙니다. 

상대방을 죽이는 것입니다. 

아가페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부모가 왜 자녀를 때립니까? 

정신세계가 잘 되어라고 하는 혼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변에 깔린 것이 이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 듣는 이런 사람들이 교회 내에도 많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내 힘이 부족할 뿐이지 우리는 할 일 투성입니다. 

율법사가 볼 때는 가정이 안정되어 있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안정되어 있고 다 잘된 상황으로 봅니다. 

하지만 영적인 비참함을 모르는 겁니다. 

이런 존재들이 도처에 늘려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잘 다닙니다. 

육신적으로 볼 때는 멀쩡합니다. 

회사 잘 다닙니다. 

하지만 영적인 상황은 고통스럽습니다. 

가족이나 학교나 회사나 친지를 봐도 온통 이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기 전에 고통을 알지 않습니까? 

그때 느끼는 것이 액션이 가해집니다. 종교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신앙지식도 아닙니다. 

영적인 아가페를 소유한 사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웃사랑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영적인 아가페로 그를 실제로 끌어오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불쌍하다고 옷을 주고 반지를 준다고 사랑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랑은 그를 건져내는 것입니다. 

정말 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느냐는 것입니다. 

반 죽어 있는 사람에게 옷이 필요할까요? 

밥을 먹여줄까요? 

다이아를 끼워줄까요? 

살려내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사랑입니다. 

너 길가에 있구나 불쌍하다고 아무리 줘도 이웃사랑이 아닙니다. 

관계유지며 친구맺기입니다. 

요즘은 sns로 친구맺기 하며 살아갑니다. 

시간 낭비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한테 못하면서 멀리 있는 사람한테 하는 것은 이웃사랑이 아닙니다. 

다 미치광이며 거짓말입니다. 

상대방은 마귀에게 맞아서 반죽어갑니다. 

그를 건져내는 것입니다. 

물론 방법론은 다음에 나옵니다. 

건져내는 것이 이웃사랑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에로스이며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사랑, 육체적인 사랑, 정욕적인 사랑, 관계적인 사랑 이런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교회도 그런 사람 많습니다. 

헌신하고 충성하면서 자리 하나 없을까 마음으로 기웃거리는 것이나 날 인정하지 않을까 이것이 믿음입니까? 

저는 개척 초기 때는 헌금을 다 공개했습니다. 

시험 들고 물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제는 수입공개를 안합니다. 그 전에는 수입지출 공개를 예배시간에 다 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받아서 인도하는데 시험에 왜 듭니까? 

당신이 교회 인도자며 목회자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목사는 헬퍼, 돕는 자입니다. 

교회는 직분이나 인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선교사나 전도사, 직분자의 자리에 관심이 있으면 안됩니다.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이웃사랑이 아닙니다. 

반쯤 죽어 있는 사람을 건져내는 것이 이웃사랑입니다. 

이웃사랑은 영적사랑이며 그래서 아가페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다 지옥 갑니다.

 이 세상 고통 다 당해도 지옥의 하루만 못합니다. 

이 땅에서 오래 살면 뭐합니까? 

지옥 가서 더 큰 고통을 당하는데 건져내야 합니다. 

참된 구원이 이웃사랑의 방법임을 빨리 깨달으셔야 됩니다. 

사마리아 비유를 듣고 사람들은 혼돈 했을 것입니다. 

옷이 없으니 내 옷을 집어주어야 한다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죽으면 지옥 가는데 빵은 소용없습니다. 

복음전파 과정에서 항상 구제가 따라오는데 빵을 주지만 예배를 위한 빵을 줍니다. 

빵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빵을 주었다고 좋아합니다. 

빵을 주었다고 고통이 해결 안됩니다. 

마귀에게 고통당하는데 빵이 해결을 줄 수 없습니다. 

그를 구원하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 받습니다.

 

저희 교회도 많은 구제를 합니다.
 비용이 엄청 납니다. 
왜 하냐구요?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서 구원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이것이 목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빵을 주는 것입니다. 
빵 때문에 고통당하지 않게 주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영생과 생명을 누리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 받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고통은 뿌리가 영적인 고통입니다.
 영적으로 좋아지면 고통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로 그 사람을 끌어들여 진짜 참된 안식과 평안과 기쁨과 부유함과 건강과 천국을 주는 이런 본질적인 건짐이 진짜 아가페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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