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19절강해

누가복음6장 219절

 

주님께서 그녀를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셨으며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누가복음 219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때는 ‘예수님’이라 표현하고, 어떤 때는 ‘주님’이라 표현합니다. 

나인성의 과부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었다

는 것입니다. 

‘그녀를 보시고’ 자기를 믿는 자입니다. 

‘그녀를 불쌍히 여기셨으며’ 하나님은 지옥 가는 사람을 절대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녀만 불쌍히 여기십니다. 

지옥가는 사람은 이미 진노가운데 심판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엄청난 긍휼이 있고, 아닌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분노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하나입니다. 

공의와사랑이 양 날개로 작용합니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다.

자녀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자녀입니다. 

반대로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순종은 자녀, 불순종은 자녀가 아닌 것이 양 날개의 원리입니다. 


불순종은 지옥의 자녀입니다. 

불순종이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임을 아셔야 되는데,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아무리 울고 난리를 쳐도 불순종은 무조건 지옥입니다. 

자녀가 아니며 진노의 대상입니다.

저희 교회는 불순종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이 나갈 때 불순종하며 버틸 때 쫓아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를 몇 십년 다니고 직분이 어떻고 또 뜨거운 신앙생활 할지라도 상관 안합니다.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은 버립니다.


절대순종이 믿음입니다. 

순종이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연락하고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관계지만, 하나님은 아무 관계를 이어나갈 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종의 끈만 연결됩니다.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헌신하고 기도나 직분도끈이 아닙니다. 

순종할 때만 끈이 유지되고 불순종하면 끈이 끊어집니다. 


지금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지옥 가는 이유가하나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끈으로 연결된 자들만 긍휼히 여기시는데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울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불쌍

히 여기는 표현이며, 내가 너를 울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의 표현이십니다. 

사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 ‘울지마’ 말은 할 수 있어도 아무 힘이 없습니다. 

감정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정에 더해서 책임을 져주십니다. 

하나님은 감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항상 의지가 숨어 있는 감정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면 좋아하는 액션이 숨어 있습니다. 

에로스는 사람의 감정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다 감정으로 끝납니다. 

감정이 행동으로 나오지 않으면 무의미합니다. 감정에 울고웃는 것은 감정주의입니다. 

뒤 배후는 마귀가 숨어 있습니다.


신앙이 뜨거웠다, 

은혜 받았다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신앙의 행동화가 중요합니다. 

은혜를 통해 행동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행동이 안되면 하나님이 아닌 마귀입니다. 

또는 인본입니다. 

그 말씀따라 행동이 바뀌는 것이 진짜입니다. 신앙생활도 아무리 울어도 행동이 안바뀌면 가짜입니다. 

회개는 죄사함이 아닙니다. 

성결의 회개가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죄사함의 조건, 속죄함입니다. 

조건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행동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 한해서 속죄의 죄사함이 적용되는 것이 누가복음의 스토리며 제목입니다. 

아무리 울며 회개해도 첫날 안 바뀌면 지옥갑니다. 

5일을 회개해서 행동이 바뀌면 속죄의 조건이 되어 천국 갑니다. 


천일을 울어도 행동이 안 바뀌면 지옥갑니다. 속죄의 적용이 회개이며 회개는 행동이 바뀌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고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회개이며 죄사함의 조건입니다. 

죄사함은 속죄함과 성결의 죄사함 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성결의 죄사함으로는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물두멍은 구원을 주지 않습니다. 

물두멍은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발판이며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말하지만 구원에 필요하지만 구원은 아닙니다. 탕자가 이방 나라에서 ‘내가 잘못 살았어’ 

거기서 평생 울어봤자 소용없습니다. 

아버지께 가야 합니다. 

행동이 일어나야 진짜 신앙입니다. 

지금 과부가 하나님을 믿는데 엄청 아파합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울지 말라고 하십니다. 

행동의 전제하입니다. 


에로스는 감정이며 아가페는 행동이 동반된 감정입니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데’하는 에로스는 감정에 취하기에 책임이 없습니다. 

행동이 동반되지 않은 감정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많은 남녀가 에로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죽습니다. 


인간은 의지와 행동이 중요합니다. 

참고 견디고 이런 요소들이 더 중요합니다. 

인간이 에로스에 걸리면 100% 실패합니다. 

이성을 아주 좋아하는 에로스적인 사람들은 늪에 다 빠지며 실패합니다.

우리가 슬퍼하면,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시며 항상 답이 숨어 있습니다. 

‘울지 말라’ 위로하시는데 큰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과부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과부는 예수님을 잘 믿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면서 무엇을 구하거나 달라거나 요청하지 않아도 내 맘 알아달라 하지 않아도, 예수님이 정말 나의 주인 된다면 예수님이 알아서 도와주시고 알아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고 알아서 내 고통을 헤아려 주시고 알아서 나를 건져주십니다. 

예수님은 귀가 먹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십니다.

내가 예수님께 긍휼을 입을 정도의 신앙을 가지면 됩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십니다. 

내가 변화되기만 하면 됩니다.

 

악한 자가 울면 잘됐다고 하지만 선한 자가 울면 도와주고 싶어집니다. 

내가 어떤 상태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선한 상태냐 악한 상태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선한 상태에서 내가 마음이 아프면 예수님이 도와주러 오십니다. 

악한데 밤새 도와달라고 기도해봤자 도와주러 오고 싶은 마음이 안 생깁니다. 

하나님이 듣기 싫다고 귀를 막으십니다. 


신앙은 내가선한 상태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십니다. 

기독교인은 악한데 밤새 기도합니다. 

이것이 미혹입니다. 

하나님은 공평정대하십니다. 

선한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악한 자를 도와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나를 불쌍히 여길 정도의 선을 가져야 합니다.

20대의 청년이 죽었는데 예수님을 잘 믿는 과부의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것을 보는 예수님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결국 기도 때문에 아들을 살린 것이 아니라 과부의 신앙 때문입니다. 


기도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을 때 해결 받습니다. 

관계 좋으면 기도 안 해도 받습니다. 

맨날 싸우다가 교회 와서 하나님께 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시겠습니까? 

평소에 하나님과 잘 지내면 하나님이 이뻐하셔서 막 주십니다. 

대한민국 기독교가 오염된 이유는 기도만 하

면 달라는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나의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하나도 안 듣고 실천안하면서 맨날 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늘 깨닫고 나를 점검하여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길 정도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주십니다. 

‘울지 말라’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얼마나 큰 말씀입니까? 

울지 않게 해 주십니다.

신앙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과시하거나 된 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빛 앞에 나아가 내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자

신을 철저히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지 못해서 안달이시고 돕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마음 때문에 축복을 못 주시고 계십니다. 

빨리 나를 돌이키고 바로 잡으면,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길 정도로 눈물을 흘리시면 안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눈에 눈물을 떨어뜨리는 신앙으로 변모가 되어야 합니다. 

백부장의 종이 왜 낫습니까? 

백부장의 신앙이 워낙 좋아서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왜 살아났느냐? 

과부의 신앙 때문입니다.


신앙이 좋으면 그냥 기적들이 나타납니다. 안 좋으면서 맨날 달라고 원한 풀어달라고 하면 듣기 싫습니다. 

온전히 변화되면 하나님이 보시고 안타까워서 우십니다. 

우리의 소원과 기도를 안 들어 주실 수가 없으며 축복을 안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백부장이 되고, 나인성 과부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십계명을 어기면지옥갑니다!
micl31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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