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72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272절

 

어느 날, 그 분은 그 분의 제자들과 배로 오르시게 되었으며,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그들은 인도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72절 말씀입니다.

‘어느 날’ ‘씨 뿌리는 자’ 설교를 하시고 나서 호수가 나오는 것은 그쪽 가버나움 확률이 큽니다. 

‘그 분은 그 분의 제자들과 배로 오르시게 되었으며,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건너편은 데가볼리지역이며, 그쪽에서 오기도 어렵고, 전도하기도 어려운 불신지역입니다. 전도지역이 아닙니다. 

전도지역은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갈릴리 지역입니다. 

불신지역은 사람들이 안 따르며 핍박지역입니다. 

북한이나 중국, 불교권, 힌두권, 이슬람권입니다. 

이런 곳들은 복음을 전하면 핍박이 따라오고 전파가  안됩니다. 

호수건너편으로 가는 것은 합리성은 제로입니다. 

따라다니는 좋은 군중이 있는데 좋은 밭을 놔두고 왜 시간 낭비하는 밭으로 가실까요?

 그런데 명령은 명령입니다.

 

‘그들은 인도되었습니다’ 

인도되었다, 

승선되었다, 

배에 태워지게 되었다는 것은 한번 배를 타면 배 마음대로입니다.

선교 하러가면 거기 상황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인도됩니다. 

이제까지 가진 계획, 연구사항들, 포부, 다 필요없습니다. 

새로운 곳에 복음 전파하러 가면 거기의 독특한 문화가 있고 종교문화나 사회문화가 있습니다. 

거기가면 거기 맞게 복음전파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건너가자’ 하시는 말씀은 납득이 안되는 말씀에다가 실제로 데가볼리에 가서 귀신들린 사람 한 명 고쳐주고 돌아옵니다. 

얼마나 낭비인 줄 모릅니다.

 귀신들린, 그것도 군대 귀신들린 영혼을 고쳐주고 배척받고 돌아오는 스토리로 끝납니다. 

수많은 인파를 설교하신 분이 갑자기 감동을 받고 ‘호수건너편으로 가자’ 하시며 건너가셔서 한 명 전도하고 쫓겨나서 다시 갈릴리 지역으로 오시는 것이 전체 윤곽입니다. 

여기서 이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이것은 성령님의 음성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임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복음 전파할 때, 영혼을 인도할 때, 많은 이들이 따르는 곳에서 하지만, 때로는 한 명을 위해 설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효율적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 이번에는 예수님의 가족이 갔을 것이고 그리고 여자들과 함께 따르는 사람들이 70명 정도 가서 한 영혼을 전도합니다. 

온 교회가 총 출동한 것입니다. 

그것도 귀신이 온전히 쓰인 한명을 간신히 구원하고 돌아옵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사역을 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누구든지 수많은 영혼들을 기도하고 기대합니다. 

전 세계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를 기대합니다. 

이것은 인본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 하셨을 때 순종하는 일입니다. 

영혼구원은 두 번째나 세 번째 일입니다. 

사역에 대해 꿈꾸는 것은 인본입니다. 

‘건너가자’하면 건너가면 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 사역은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수확을 얻고자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지교회에 얼마나 영혼들이 올까 기대하지 않고 예측하지도 않습니다.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면 순종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규모가 작지만, 지교회 세우는 것도 예수님의 명령에 의해 살고 죽습니다. 

건너가서 몇 명이 살고 죽을지 모릅니다. 

건너갈 때 엄청난 고생을 했는데도 얻은 수확은 많을까요? 

달랑 한 영혼입니다.

 

뭐가 중요할까요?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형통할 수도 있고 평안할 수도 있습니다. 

순종할 때, 엄청난 고생도 오기도 하며 죽음의 위기까지 올 수 있습니다. 

목적은 한 영혼인데 죽냐 사느냐 문제가 생깁니다. 

나중에 허탈 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영혼수확은 거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과정에서는 고난이 오고 열매가 없지만 예수님이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너가자’ 하실 때 건너면 함께 하십니다.

 안 건너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인생의 존재가 무엇일까요? 

내가 무엇을 이루어냈다, 

만들어냈다가 아니라 오늘도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가장 중요합니다. 

살면서 고통이 많다? 고난이 많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업적 많이 남기고 남에게 어필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예수님 한 분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본질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할 때 나와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자’ 하시는데 안가면 함께 안하시며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순종하면 예수님이 함께 하시며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신앙은 과정입니다. 

이해될 수 없는 것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개인에게 사명이 떨어질 때 모두 ‘아멘’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아멘’입니다. 

‘건너가자’하면 무조건 ‘아멘’합니다. 

신전도사님의 예언에도 ‘아멘’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음성이라면 무조건 ‘아멘’입니다. 

경비, 효율 따지지 않습니다. 

계산하면 인본주의입니다. 

아주 먼 지방에서 오시는 분에게 ‘출석하십시오’하면 ‘아멘’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 사이비 아니야?’ 

예수님 안 만나면 그런 것들이 이해가 안됩니다. 

‘부모님 장례 치루고 올께요’ 

예수님은 ‘놔두고 나를 따르라’ ‘가지고 있는 것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와 결혼해라, 

일본 갔다와라 그러면 저를 교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해가 안되지만 나중에 순종한 다음 결과를 통해서 아십니다.

 

수많은 군중들에게 설교했지만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지 순종을 안합니다. 

참믿음이 안 생깁니다. 

거꾸로 불신지역이고 심판지역이지만 전파했을 때 한 영혼이라도 진짜 따릅니다. 

바로 이겁니다. 

저희교회는 순종하는 한 사람을 원합니다. 

예수님이 밭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군중들에게 실망하십니다. 

그리고 모드를 바꾸어 한명의 영혼을 위해 건너가십니다. 

한 명의 영혼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제가 예전에 오랫동안 영적 중환자 사역을 한 이유가 시간과 돈이 엄청 들어가지만 한 영혼을 위해 투자를 하는 겁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진실 된 한 사람을 원합니다. 

해보니 목사들이나 기도원원장들이나 기도꾼들은 잘 안됩니다. 

순종의 마음이 안되니 말씀이 안들어갑니다.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안하면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귀신들린 이 사람은 비참한 인생이었기에 무엇을 따르겠습니까? 

무조건 순종합니다. 

순종해도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구원해주신 주님을 따르는 겁니다. 

사람들은 믿을 게 있습니다. 

난 목사야, 난 서기관이야, 바리새인이야, 

그러니 안 따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충성해야 구원이 옵니다. 

구원은 생명까지 드리는 것입니다. 

거듭남, 성령세례, 죄에서 돌아서고, 은사, 직분이 구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칩니다. 

거기까지가 구원입니다. 

‘여호와 이레’가 구원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문제, 출석과 헌금의 문제, 봉사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순종의 문제임을 아셔야 합니다.

 

천국 문에서 왜 탈락되느냐? 

목숨을 못 드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을 사랑하면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 영혼을 죽이는 정도가 되어야 구원입니다. 왜 구원 못 받을까요? 

은사 많고, 기도 많이 하고, 말씀 많이 알고, 남들 많이 가르치고, 응답 받고, 음성 들어도 그런데 뭐가 안되느냐?  

목숨을 못 드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순교했습니다. 

내가 목숨을 드리는 단계까지 통과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도 엄청 인기 많고 이스라엘에서도 메사야로 추앙받지만 이때 십자가를 선택합니다. 

죽음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왜 많은 군중들이 지옥가고 한명이 천국가느냐? 

예수님이 그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대교회? 

따르는 많은 무리가 있으면 뭐합니까? 

대부분 다 지옥갑니다. 

반대로 교회가 작아도 순종하면 그 안에 참구원이 있는 겁니다. 

죄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구원 없습니다. 

구원은 쉽지 않습니다. 

내 목숨까지도 드릴 수 있는, 아브라함처럼 자기 목숨보다 귀중한 자식의 목숨도 드리는 것이 구원입니다.

 

한 명의 구원을 위해 많은 사람이 고생 진탕합니다. 

이것이 참된 사역입니다. 

한 명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마음은 마음대로 뺏기고 엄청 고통스럽습니다. 

바울은 ‘내가 해산의 수고로 너희를 낳았다’고 합니다. 

한 명 낳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구원은 그토록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구원을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도 수십년 신앙생활해도 어떤 분에게 손을 얹었는데 1년 뒤에 구원을 허락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역한다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주께 가까이 하기에 일을 맡기시는 겁니다. 

수백명 전도해도 하나님은 우리교회에서 1년 뒤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저희 교회 1년 넘게 다니신 분도 이제 의인이라 하나님이 칭하시며 구원이라고 하십니다. 

생각의 지혜가 많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구원은 어려운 겁니다.

 

구원기도문 따라한다고, 세례 받는다고, 교회 다니고, 집사, 장로 되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지만 길가며 바위 위며 가시덤불 위라는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의 가족도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함이 없었습니다. 

행함은 순종의 신앙입니다. 

잘하다가도 순종안하면 사울왕처럼 떨어져나갑니다. 

순종은 평생되는 신앙의 행렬입니다. 

평생 순종하고 평생 충성합니다. 

목숨까지도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자기 아들한테 목숨을 요구했는데 우리한테 안한다구요? 

그리고 구원을 거저 얻는다구요? 

예수님의 은혜로 거저 구원받는다구요? 

우리 목숨까지도 예수님처럼 내 놓을 단계까지 가야 됩니다. 

구원은 내 목숨도 내 놓을 단계까지 통과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믿는다는 이유로 구원 안 시킵니다. 

그러면 왜 제자들이 다 순교했으며 사도 바울도 순교했을까요? 

하나님은 바보 아니십니다.

 ‘나도 내 아들 내 놓았다, 

아브라함아 너도 네 아들 내 놓아라’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과 신앙은 어렵습니다. 

‘내가 헌금했는데, 내가 봉사했는데, 충성했는데요’ ‘그래? 

나는 내 아들을 죽였다’ 

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아들을 죽일 정도로 되어야 합니다. 

아들까지 바칠 정도의 진짜를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정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느끼실 겁니다. 

부부도 그렇고 자식도 그럴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진짜는 거의 없습니다. 

진짜를 찾기 위해 저는 모읍니다. 

저희 교회는 대부분이 진짜입니다.

 저는 영분별 은사가 있어서 사람들 다 압니다. 천국 간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 지옥갑니다. 

한 사람 진짜 얻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저희 교회는 진짜인 분이 대부분 오십니다. 

겉은 초라해보이지만 속은 빛으로 채워집니다. 아주 귀하신 분들이십니다. 

‘저는  못 먹어도 못 입어도 괜찮으니 성도 분들이 잘 먹게 해주세요, 

잘 입게 해주세요, 

부유하게 해주세요’ 

너무 귀하기에 이런 기도가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이 세상에서는 모릅니다. 

죽을 때 압니다. 

‘군중인 가짜보다 저 멀리 있는 진짜 한 명이 중요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엄청난 고생과 많은 것을 지불하고 한 명을 얻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남자라 해산의 수고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상입니다.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매질을 당하고, 칼의 위험, 굶주림, 매맞음 이런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겁니다. 

사람을 낚는데 구원이 엄청 어렵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목회자는 한 영혼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드려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누가 살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썩어야 많은 이들이 살 수 있는 것처럼 목회자, 사역자, 선교사가 죽어야 합니다. 선교지 가서 내가 얻으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성도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무엇을 얻고 이득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몽땅 드려야 합니다. 

교회에 들어오는 헌금은 목회자의 것이 아닙니다. 

월급이나 찾는 그런 목회자는 천국 못 갑니다. 삮꾼입니다. 

직분만 다를 뿐 성도나 목회자나 선교사나 다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에 영혼구원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데 시간도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목숨을 드리면 영생과 축복이 나에게 주어집니다. 

내가 썩어야 내가 또 사는 겁니다. 

자신의 영혼을 죽여야 내 영혼이 사는 겁니다. 자신을 드리지 않으면 교회가 안됩니다.

 

저희 교회는 오랜 시간 예배를 드려도 지루하지 않고 참 재미있습니다. 

행복합니다. 

여러분 한 영혼을 위해 내 목숨까지도 드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 구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앞으로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진짜 한 영혼을 위한 열망이 있다면 반드시 영혼은 구령됩니다. 

마치겠습니다!


*십계명을 어기면지옥갑니다!

  micl31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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