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344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344절

 

그들이 그분에게서 떠나게 되었는데, 베드로는 자기가 말하는지도 알지 못하며,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장막 셋을 만들려는데, 하나는 당신에게, 모세에게 하나 그리고 하나는 엘리야에게입니다.

누가복음 344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영광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영광은 세상 영광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명예와 사람들의 인기와 부를 말하는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세계로 깊이 안 들어가는 이유가 세상의 영광을 구하기에 기도에 깊이 안 들어갑니다.

 인간은 조금만 좋고 조금 잘되면 기도 안합니다. 

세상의 영광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40년간 기도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40년간 세상의 영광을 왕자로서 살아봤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미션을 받게 됩니다. 

엘리야가 거짓선지자 850명을 죽이고 시내산을 찾아갑니다. 

홀홀단신으로 올라가는데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세계가 기도입니다. 

세상영광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경험했고 알기에 하나님만을 귀히 여깁니다.

 

과거 중세 때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들어가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에 들어갑니다. 

지금은 타락했습니다.

 자기가 기도했네 은사있네 자신의 영광을 구합니다. 

그러니 모세와 엘리야의 영적수준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너희들은 날 따른다고 하면서 세상의 영광을 구하지?

 이들을 본받아! 이들은 세상의 영광을 버리고 날 따르는 자들이야 기도를 통해서 얻은 자들이야‘ 시청각 교육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분에게서 떠나게 되었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환상가운데 떠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말하는지도 알지 못하며,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께 말을 하는데 바로 잠재의식입니다. 

말을 할 때 계획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계약을 할 때나 대화를 할 때 마음에 담았다가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야 임마 자식아 나옵니다. 

베드로의 말은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잠재의식에서 나옵니다.

 ‘선생님’ 이 전에는 332절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이라고 호칭이 달라졌습니다.

 인간의 믿음은 가변적입니다.

 한 때 회개 많이 한 사람들을 믿음 좋다고 보지 마십시오.

 언제 믿음이 돌변할지 모릅니다. 

직분이 목사라고 교회오래 다닌다고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가 믿음이 충만할 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 고백했지만 지금은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육적인 말이 나왔습니다. 

인간의 신앙은 금방 잃어버립니다. 

인간의 신앙은 아주 좋다가도 마귀의 공격으로 마귀가 한번 탁 치고 들어오면 믿음이 파선되어버립니다.

 파선은 배가 암초에 걸리면 깨져버립니다.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파선시키며 파괴시켜버립니다. 

우리는 그런 영적세계를 분별치 못하고 자신이 믿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결코 불변이 아니며 예측이 안됩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장막 셋을 만들려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 영계의 영광을 보았기에 영광에 매력을 느낀 겁니다.

 ‘장막’은 지금의 집을 말하는데 살겠다고 합니다.

 ‘하나는 당신에게, 모세에게 하나 그리고 하나는 엘리야에게입니다’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가운데 있으니 여기서 살자고 산위에서 제의하는 겁니다. 호칭은 ‘선생님!’입니다. 

믿음이 없는 겁니다. 

베드로의 이 이야기를 왜 기록했을까요? 

베드로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아닙니다. 

지금도 베드로처럼 우리도 믿음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엄밀하게 말해서 본질적이지 않습니다. 

기도하면서 도와 주세요 등 달라고 하는 기도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찬양을 드릴 때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듣기 좋게 들려주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런데 내 하고 싶은 대로 찬양을 부릅니다.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이 인식 안되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부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나한테 듣고 싶은 것을 말해드리는 겁니다. 

동양에서도 예의가 있습니다. 

부모님한테 듣기 좋은 말을 하도록 말을 배웁니다. 

애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막하면 버릇없다고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나한테 원하는 것을 들으며 그것을 고백하는 겁니다. 

영광이 보여지니 베드로처럼 우리 인간은 영광가운데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니 잠재의식가운데 헛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신앙을 통해서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미혹입니다. 

‘헌금을 드렸으니 축복주시겠지, 봉사했으니 건강주시겠지, 충성했으니 뭔가 주시겠지’ 이것은 헛된 것들이며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 위주가 아니며 내가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가 왜 미끄러지느냐? 

사도바울은 매를 맞고 죽음의 위험과 강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 등 모든 것을 기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세 제자는 그런 본질적인 신앙이 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손해 보는 것이 기쁜 것이 신앙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헌신 하면서 불평이 나옵니까? 

손해의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내가 바치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저는 과거 집사시절에 사회적 지위가 있었지만 승용차를 팔고 제 돈으로 봉고를 샀습니다. 그 봉고로 주일학교 학생들을 태우고 섬기는데 사용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신앙이 좋은 줄 압니다. 

아무도 여러분의 신앙을 터치 안하기 때문에 착각합니다. 

인생이 지나간 다음에 자신의 인생을 살펴보십시오.

 한 것이 무엇이 있는 지, 입만 살아 있지는 않는지 보십시오.

 정말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의 별세를 말하는데 그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영광만 탐냅니다. 

정말 예수님을 위한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앙이 없는 겁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스토리입니다.

 저는 아버님이 병중에 있을 때 간호하며 밤을 새 가며 기도했습니다. 

저의 애절함과 탄식과 눈물은 샐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여러분들은 조금 헌신한 것으로 내세웁니다. 

하나님이라면 그런 여러분을 기뻐하시겠습니까?

 

베드로가 왜 맛이 갔을까요? 

예수님의 별세를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데 베드로뿐만 아니라 아무도 십자가를 생각하며 십자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진실 된 신자는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영광을 기피하며 오히려 잘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오히려 핍박을 좋아하고 고난을 좋아하고 안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기서 신앙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 영광입니다. 

기도를 해도 찬양을 해도 모든 메시지를 들어도 복주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까는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지금 시대는 까는 시대가 아니라 ‘여러분은 복 받습니다. 

아멘’을 좋아하는 시대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배후에는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선포하지도 않고 그런 것들로 꼬시지 않습니다. 

뭐가 아쉬워서 우리를 꼬시겠습니까? 

우리만 아쉬울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선포하시지 않습니다.

 그냥 축복은 주십니다. 

우리가 헌신할 때 하나님은 복 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더 헌신하라고 하십니다. 

축복은 세운 자를 통해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내가 왜 사느냐? 

나를 위해서? 아닙니다.

 내 영광이나 내 흥망성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 사람이 모세입니다. 

그 본질을 본받으십시오. 

그 영광만을 본받고 추구하니까 기독교가 미혹되고 타락되는 겁니다.

 우리는 정말 기도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지금 베드로가 기도를 많이 함에도 실패했습니다. 

진짜 기도로 들어가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내면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내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쇄신하고 헌신하고 눈물 뿌리고 하나님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내면이 바뀌어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존재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실패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내 존재 자체가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기도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모여서 기도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위해서 바뀌는 것입니다. 
기도로 우리의 근본적인 뿌리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헌신의 행복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껴야 합니다. 사람은 헌신할 때 영의 행복을 느낍니다.
 영광 받으면 영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내가 버릴 때 영의 행복을 느낍니다. 
무엇을 원합니까? 
세상의 영광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희열입니까? 
이들이 받는 영광은 영적인 희열임을 인식하시고 진실된 헌신과 사랑으로 영적인 희열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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