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09절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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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09절 

그가 말했습니다. “그에게 긍휼을 행한 자입니다.”

누가복음 409절 말씀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는 율법사입니다. 

율법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었을 때 찔렸을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이 사마리아 사람이 아닌 제사장이나 레위인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제사장과 레위인입니다. 

그런데 실제 보니 ‘내가 저기 있구나’ 깨달은 것입니다. 

‘그에게 긍휼을 행한 자입니다.’ 이 세 명 가운데 누가 선한 이웃인가 질문했을 때 우리 같으면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사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본질을 말하고 진리를 말합니다. 

강도 만난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가 이웃이 되는 쪽으로 말하는 겁니다. 누가 내 이웃인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 갈 때 구조가 ‘누가 나한테 잘해주느냐? 

이웃되느냐? 

도움 되느냐?’가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에 대해 이웃이 되는 쪽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삶으로 전향됩니다. 

내가 받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 항상 열 받고 시험 듭니다. 

‘저 사람이 안 해 주네’ 안 해 준 것을 계수합니다. 

땡 탈락입니다. 

내가 이웃이 되는 쪽으로 구조가 돌아가지 않는 한 아가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가페는 원래 주는 사랑입니다. 

받는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 이웃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니가 나한테 이웃이 되어 줘’가 아니라 ‘내가 이웃이 되어 줄게’ 내가 너에게 의미가 되는 것이 아가페입니다. 

시험 받고 열 받고 섭섭하고 마음이 안 좋은 것은 아가페가 아닙니다. 

아가페는 그런 세계가 없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가 이웃이 되면 아무것도 섭섭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뭘 더 잘해주어야지 자꾸 공급자가 되어주려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 ‘쟤가 무엇을 안 가져오나’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뭐 해준 것도 없고 아쉬운 마음을 갖습니다. 

아가페입니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는 정서기에 마음의 고통이 없습니다.

 

아가페를 행해야 됩니다. 

여기에 구성요소가 긍휼이 들어가야 합니다.

 아가페는 주는 것인데 긍휼이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냐 입니다. 

긍휼을 소유할 때 주는 자가 되고 돌보는 자가 됩니다. 

주는 자가 체질화되고, 습관화되어야 합니다. 

저는 옛날에 길을 가다가 누가 동냥하면 지나친 적이 없었습니다. 

장애인을 보면 불쌍해서 안 운적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 가짜 많다고 살살하라고 해서 잘 안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실에도 중도 오고 거지들이 오고 사람들이 줄지어 많이 왔었지만 물론 이것은 아가페가 아닙니다. 

아가페는 주는 삶입니다. 

불쌍히 여겨집니다. 

병자를 보고 불쌍해서 간호해주고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도 아가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립니다. 

예배는 헌금 중심입니다. 

봉사로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으로 전향되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늘 아쉬운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아가페는 특정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자에게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겁니다. 

선하게 대하고 공급하고 위로해주고 사랑해주고 용서를 베푸는 삶으로 바뀌는 총체적인 삶이 바뀌는 것인데 구제를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총체적인 삶의 변화입니다. 

내가 섭섭하지 않고 공급해줄 때 기쁨이 옵니다. 

평안함이 옵니다. 

인간의 행복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행복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구조가 ! 누군가에게 공급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부모는 한겨울에 애기 똥기저귀 빨 때 행복합니다. 

행복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때 오는 것입니다. 

행복의 비결은 긍휼을 베풀 때 마음에 행복을 느낍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사람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주게 되고 공급해주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줍니다. 

내가 줌으로써 행복을 누립니다.

 

영생을 어떻게 누리느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 목숨을 바칩니다. 

이것이 떡상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 동시에 내 이웃에게 주는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내가 얼마 있느냐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나에겐 건강이 남아 있고 돈 한푼이라도 남아있고 시간이 남아 있고 내 지혜가 남아 있고 내 탤런트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공유하면서 주는 삶으로 바뀌면 여전히 내게 올라옵니다.

 사람은 무엇을 준다할 지라도 고갈 안됩니다. 

‘주면 난 없는데’ 하지만 또 생깁니다. 돈도 또 생깁니다. 

저는 오랜 세월을 주는 삶을 살아서 돈을 돈으로 안봅니다. 

제가 남기지 않다보니 신전도사님 환상가운데 하나님이 교회에 돈을 비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써도 올라오니까 그렇습니다. 

재능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세계는 내가 쓰면 아깝다 아닙니다. 

새롭게 나옵니다.

 한도 끝도 없습니다. 

건강, 지혜, 물질이 올라오고 좋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누구를 통해서? 

공급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공급자이시기에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소유에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사용될 때 의미가 있습니다. 

돈도 사용되기 위해 법니다.

돈도 그냥 있으면 의미가 없고 사용됨으로 가치가 발휘됩니다. 

어떻게 썼느냐 가 중요합니다. 

사랑하는데 아가페로 쓰는 겁니다. 

건강을 쓰는 겁니다. 

지혜도 있으면 뭐합니까? 

쓰는 겁니다. 

아가페를 활용하면 점점 더 많은 것이 부어집니다. 

하나님은 점점 위로부터 많이 부어주십니다. 

점점 부요하게 점점 건강하게 점점 지혜롭게 해주시는데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많이 드릴수록 점점 더 많이 부어집니다. 

구제를 많이 할수록 더 많이 들어옵니다. 

하나님께 아까워하고 이웃에 아까워하는 마음은 아가페가 아닙니다. 

그 때 내가 정신이 나갔지 하며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과감하게 드리십시오.

 이웃에 투자하십시오.

 그 때 행복을 느낍니다. 

사람은 행복은 다른 방법 없습니다. 

내가 베풀 때 옵니다.

 정말인가 아닌가 한번 실천하십시오. 남의 잘못을 생각하는 시간에, 남에게 선을 베풀고 실천하는 마음으로 돌아서면 다 잊어버립니다. 

정신구조가 왜 피트해야 되는가? 

그 이유가 자꾸 받는 구조로 가니까 시험들고 힘든 겁니다. 

주는 구조라 바뀌면 어둠이 없는 겁니다. 

어둠은 항상 ‘목사가 이런 말을 했어?’ 들어옵니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구나’ 하면 은혜가 됩니다. 

모든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받은 은혜만 생각하십시오. 

10명의 문둥병자들이 나았는데 1명만 감사하러 돌아옵니다. 

예수님은 ‘9명은 어디 있느냐?’하십니다. 

은혜를 받았는데 9명은 은혜를 갚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생명을 받았고, 물질을 받았고, 신앙을 받았고 많은 재능들을 받았습니다. 

가지고 있으면 배은망덕입니다. 

하나님 앞에 돌려드려야 합니다. 

아니면 배은망덕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주셨습니다. 

주신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 써야 합니다. 

기쁨이 옵니다. 

하나님을 위해 쓰고 이웃을 위해 쓰고 마지막에 나를 위해 씁니다.

 나부터 챙기면 안됩니다. 

나는 맨 마지막에 챙깁니다. 

날 위해 돈을 챙기고 건강을 챙기면 거꾸로 sad입니다.

 슬픔입니다. 

조이 joy는 헌신적일 때 나옵니다.

 나부터 챙기고 여유 있으면 하나님 조금 드리고 남 챙기는 것은 sad입니다. 모드를 바꾸십시오.

 하나님 앞에 퍼스트를 드리시고 그 다음에 이웃에게 드리시고 맨 마지막에 남은 것 나 자신을 위해 쓰면 됩니다. 

나 자신의 것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뭐합니까? 

써야 됩니다. 

사람들은 자꾸 쌓아놓는데 신경 씁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바쳐지고 이웃을 위해 쓰면 어마어마하게 우리에게 쏟아집니다. 

언제까지 슬프게 사실 것입니까? 

고통과 기쁨은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나를 위해 쓰면 불행하고 늘 염려가 들고 고통이 들어옵니다. 

주는 삶으로 모드를 전향하십시오. 

새들은 날아다닙니다. 

속이 텅 비어 있습니다. 

새는 깃털처럼 무게가 나가지 않습니다. 

가볍습니다.

 내 것을 소유하지 않을 때 가벼워지는 겁니다. 

철새들은 많이 먹고 꽉 찬 상태에서 못 날아가서 죽습니다. 

인생이 왜 죽느냐?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 가족 사랑하고 다 자기 사랑입니다. 

새들도 무거우면 죽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날 위해 살면서 나의 소유에 집착하게되면 못 삽니다.

 우리가 갈 곳이 이 땅입니까? 

천국입니다. 천국은 ‘헤븐즈’ 복수입니다.

 ‘하늘들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 미련가지면 천국 못갑니다. 

미련이 많을수록 힘듭니다. 

소유 없으면 미련도 없습니다.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인간은 힘듭니다. 

돈이 있는 곳에 자꾸 신경이 갑니다.

 

저도 신전도사님도 돈이 없어도 잘 삽니다.
 성도들도 잘 삽니다. 
뭔가 소유하고 집착하면 어렵고, 반대로 버리면 편합니다. 
천국을 향해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명예도 아니고 부유함도 아니고 이 땅에서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
원하는 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원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가벼워집니다. 
첫 비행이 힘듭니다. 
처음에 버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삭개오가 재산을 줄여버립니다. 
몸이 가벼워진 겁니다. 
우리는 가진 것 때문에 전전긍긍하면 한없이 고통스럽습니다. 
집이 크고 화려하고 없는 것도 없는데 차도 아주 좋은 데 얼굴은 불행한 얼굴입니다. 
집이 허름하고 차도 허름하고 아무것도 없어도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굉장히 쉽습니다. 
인간의 소유에, 가진 것에, 직위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칠수록 드릴수록 행복은 점점 증가됩니다. 
무소유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유물이 우리를 잡아당기는 힘이기에 줄이는 것입니다. 
헬륨가스를 넣으면 풍선이 확 올라갑니다. 
질소를 넣으면 그대로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채우지 마시고 하늘에 있는 것으로 채우면 천국 가는 길로 올라갑니다. 
세상적인 풍습, 사고방식 다 버려야 합니다. 
돈은 모일수록 쌓입니다. 
하지만 세상방식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는 길에 서 있어야지 절대 이 땅에 미련 가지면 안됩니다. 
그것은 나를 죽이는 겁니다. 
밥도 많이 먹으면 장수 못해요 심장이 무리가 가서 오래 못 삽니다. 
소식해야 합니다. 
먹는데 미련가지지 마시고 덜 먹고 덜 쓰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질 때 더 장수하고 더 행복하고 천국에 상급 쌓는데 더 나은 삶으로 되는 것입니다. 
율법사의 삶과 여러분의 삶과 비교해보십시오. 
율법사는 높이 올라간 사람입니다. 
높이 올라가려면 자기를 위해서 해야 되는데 이제는 남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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