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32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32절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자는 내게 적대적인 것이며,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것이다.

누가복음 432절 말씀입니다.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자는 내게 적대적인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을까요? 

실제가 아니고 가상이기에 어렵습니다. 

우리는 가상으로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기쁨과 행복으로 찬양도 ‘내 마음속에’♫ 부릅니다. 

예수님이 늘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거기 우리 영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함께 있지 않은 자는 적대적인 것이다. 귀신과 예수님은 적대적입니다. 

귀신은 적군입니다. 

마귀와 싸우는 것도 마귀가 적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으면 귀신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귀신의 통치가운데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통치가운데 있습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내가 어디 있느냐? 입니다.

 

저번 주에 심방을 가서 손을 얹었는데 그러자 그 분이 기도하러 다니는 교회가 눈에 보이고 교회 창문이 닫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기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성도님도 3일 동안 너무 기도가 안되서 힘들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쓰러져서 저희가 안수했는데 다리 밑에 귀신이 붙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 우리에게 귀신이 들어오고 붙습니까? 

귀신은 돌아다니다가 우리가 귀신의 말에 순종하면 우리 몸에 붙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우리 몸에 들어오는데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을 때 내가 어둠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어느 편에 가담하게 됩니다. 

우리 영적상태가 중간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항상 어느 편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나중에 저의 설교말씀을 듣고 행복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살짝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은 때는 귀신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우리가 은혜가운데 있을 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나라와 어둠의 나라가 동시에 있기에 어떤 때는 예수님과 함께 있지만, 귀신과 함께 있을 때는 질병이 오기도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고 이런 세계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계와 마귀의 세계에서 갈팡질팡 살아갑니다. 

방황합니다. 

홍해 건넌 뒤에 가나안 가기까지 우리는 구원에서 방황합니다. 

예수님이 온전히 나에게 통치자로 설 때까지 이리 붙었다가 저리 붙었다가 방황합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이나 영적 사고방식은 늘 방황하며 헷갈립니다. 

안수할 때 ‘난 안그런데’ 이해를 못하는 경우는 방황하기에 영적 말을 잘 못 알아듣습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귀신과 적대적이 됩니다.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것이다’ 

어둠과 함께 있으면 헤치는데 하나님 나라를 공격합니다. 

목사를 공격하는 것은 어둠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목사를 싫어하고 믿지 못합니다. 

목사님 밖에 없다고 춤을 추던 사람도  어둠이 강해지면 싫어집니다. 

하나님께 함께 거하느냐? 

귀신과 함께 거하느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삼자나 중간이 없습니다.

 은혜가 들어가면 목사님 말씀이 은혜가 되고, 예배가 은혜가 되고 사모가 되며 간절히 원해지며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 교회 예배드릴 때 새롭게 성도들이 성전 한 가운데로 모이게 예배를 드리니까 은혜가 임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쪽으로 온 성도가 하나가 됩니다. 

마음이 더 뜨거워집니다. 

어린 아이일지라도 예배드리는 자리가 다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와 하나가 되면 안됩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예수님과 적대적이며 예수님과 반대되기가 쉽습니다. 

제가 중3때 한 친구가 예배 마치고 어떤 성도 얼굴을 손으로 강타하기에 알고 보니 그 성도가 집사 안준다고 3년 동안 목사님을 괴롭힌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배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성도입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과 반대에 있으면서 예배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안되면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 안의 귀신 때문입니다. 

귀신과 하나님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귀신이 많아지면 목사님과 적대적이 됩니다. 

처음에 중보 하지만 나중에 제명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강이 생기고 너무 멀어지는데 귀신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안되면 제명을 통해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합니다. 

어둠이 너무 강한 사람은 빛을 헤칩니다. 

참교회를 무너뜨립니다. 

귀신이 강해지면 교회가 무너지는데 있는 성도들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저는 50년 동안 교회를 다녔습니다. 

수많은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로나 안수집사가 무너뜨립니다. 

목사를 공격하기도 하고 금전적으로 목사의 권한을 방해합니다. 

목사를 쫓아내기도 합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영적세계를 보여주는 곳인데, 교회가 아니더라도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 예수님께 붙어 있다가 귀신에게 붙는 경우도 생깁니다. 

우울함도 오고, 어려운 참담한 고통이 오고, 마음이 어두워서 의욕을 잃고, 용기가 사라지는데 귀신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붙으면 도전적이 되고 긍정적이 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집니다. 

우리는 늘 스스로 내 안을 잘 살펴야 합니다. 

어디가 강한가를 봐야 합니다. 

목사는 항상 하나님께 붙어 있는 체질이어야 합니다. 

이 한 가지 다른 것은 없습니다. 

안티는 늘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중간에 점점 붙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우리는 늘 스스로 살펴서 귀신에게 가까운가, 하나님과 가까운가 살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귀신과 하나님이 늘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늘 왔다갔다 합니다. 

신앙이 점점 좋아지면서 귀신과 함께 할 수 없는 순간이 스스로 옵니다.

 

귀신이 강해지면 늘 시험 듭니다. 

이간질 시키고 걸고넘어집니다. 

귀신은 시험의 영입니다. 

자꾸 우리를 헤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헤치는 사람은 귀신과 가깝다는 것입니다. 

항상 교회를 보면 성도들을 영적으로 헤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헤집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괜히 전화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괜찮아지면 회복됩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안 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나가달라는 권유를 합니다.

 

어떤 벌레들은 빛을 좋아하고 어떤 벌레들은 빛을 싫어합니다. 

불 켜면 나방 외에는 다 도망갑니다. 

인간도 어둠을 좋아하는가 빛을 좋아하는가 우리 영이 갈등합니다. 

내가 어둠을 좋아하면 어둠에 가게 되어 있고 결국 지옥이며, 내가 빛을 좋아하면 빛에 가게 되어 있고 결국 천국입니다. 

내 영이 어디에 필링, 친화적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빛에 친화적이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성령충만해집니다. 

반대가 되면 어둠이 충만해집니다. 

성령충만해지면 목사님이 좋아집니다. 교회직분자가 좋습니다. 

어둠이 강하면 목사님이 안 좋아 보이고 직분자들이 시덥잖게 보입니다. 

빛을 좋아하여 빛으로 나아가는 것과 어둠을 좋아해서 어둠으로 나아가는 것은 시간이 있는데 이 시간이 구원의 기회며 변화의 기회입니다. 

이 시간에 빛에 붙으면 영이 계속 성장합니다.

많은 어둠들이 있습니다. 

용서치 못하는 죄들이 많습니다. 

못하면 지옥 갑니다. 

몸이 추우면 따뜻한 불에 쬐면 추위가 사라집니다. 

빛에 가까이 하면 죄를 짓게 하는 요인이 나간다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가까이 가는가가 천국을 결정합니다. 

예배를 사모하고 열망하고 기도회를 사모하면 점점 빛에 가까워집니다.

 기도로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천국 가는 길입니다.

 

스스로 우리를 진단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예배에서 멀어졌는가? 

기도에서 멀어졌는가? 

하나님과 멀어졌는가? 

내가 헤치는 자가 되지 말고 모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으는 자!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것이다’ 

참석하라고 성도들을 모으게 하는 자가 있고 ‘그게 그거야’ 헤치는 자가 있습니다. 

반대편에 동의하는 것은 헤치는 자입니다. 

모이기를 애쓰는 사람에게 ‘힘들겠다 어떻게 사냐’ 헤치는 자입니다. 

어둠이 강하면 하나님의 일에 늘 부정적이고 겉으로는 안 그러지만 속으로는 하나님과 적대적인 말이 나옵니다.

 어떤 분에게 손을 얹었는데 하나님이 ‘니가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냐? 

나한테 말을 해보라’ 혼을 내셨습니다. 내용은 모르지만 하나님께 적대적인 말 한마디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말을 해야 되는데 인간적인 사랑으로 하는 말은 인본적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이기에 신전도사님을 호되게 대합니다. 

인간적인 말은 인간을 다 죽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의 말을 안하고 자기 말을 하면 인간을 죽이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은 ‘그렇구나 내가 고생하는구나’ 엉뚱하게 생각합니다. 

축복으로 생각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사람을 모아야 하고 영혼들을 마음으로 모아야 합니다. 

충성하는 사람에게 격려해주는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위로의 말을 하면 듣는 자가 헷갈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땐 하나님과 가까이 할수록 많이 합니다. 

‘그렇게 충성하면 뭐라도 떨어지냐’ 하면 헤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충성하다가도 브레이크가 걸려 ‘내가 잘못된 건가’ 생각하게 됩니다. 

모으는 자는 하나님과 가까이 가도록 모으는 것입니다. 

모아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헤치는 자입니까? 

모으는 자입니까? 

우리 눈에 귀신이 안보이지만 현상적으로 귀신이 역사한다는 것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안수할 때 하나님과 가까운 지 귀신과 가까운 지 보여줍니다. 

멀어서 근신으로 때리면 어떤 사람은 나갑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가까운 줄 알고 열 받아서 나갑니다. 

안수기도는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나는 잘 믿는데’ 하다가 이탈되어 나갑니다. 

우리 교회는 제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래서 어둠들이 못 견디고 다 떠나갑니다. 

귀신이 강한 사람은 다 떠나갑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만 남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예배와 기도와 찬양이 있습니다. 

평안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교회, 신정교회입니다. 

항상 행복하고 은혜롭습니다. 

왜냐하면 어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모이는 자들이며 영적 친화력이 강합니다.

 

모으는 자와 헤치는 자는 내 안의 귀신이 많냐, 적냐를 보여주는 프리즘입니다. 

정말 말씀을 사랑하는가? 

교회를 사랑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교회를 엄청 좋아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수님을 아주 좋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중고등학생이 열명정도였기에 수가 작아서 제가 매일 전도를 나갑니다. 

급격히 부흥되었습니다. 

나중에 45명까지 부흥됩니다. 

모으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모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헤치는 자가 되지 마시고,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온전해지면 내가 빛에 가깝다는 증거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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