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47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247절

 

그 분이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으로 들어왔으나, 너는 내 발에 물도 주지 않았다. 

이 자는 눈물로 내 양발을 적셨으며, 그녀의 머리털로 씻었다.

누가복음 247절 말씀입니다.

 ‘그 분이 여자를 돌아보시며’ 예수님이 식탁 앞에서 식사하시고 계셨으며, 시몬은 아마 예수님 맞은편에 있었을 것입니다. 

여자는 예수님 발뒤꿈치 쪽으로 와서 눈물적신 머리털로 예수님의 양발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뒤로 선 것입니다. 

그래서 뒤로 돌아보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돌아보다’는 다 뒤로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뒤로 돌아보다’라고 바로 표현하는데 헬라어는  돌아보는 것이 뒤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이 여자는 머리털이 눈물로 적셔졌고 그 머리카락으로 예수님 발을 닦았기에 많이 헝클어졌을 것입니다.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단정하지도 않습니다. 

‘시몬! 이 여자 잘 봐’ 우리도 옆 사람이 잘못하면 다른 이를 가리키며 ‘잘 봐’ 딴 사람을 보라고 합니다. 

너와 다르니까 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나와 다른 모습을 잘 봐야 합니다.

 나와 다른 찬양, 나와 다른 기도, 나와 다른 말씀을 잘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던 대로 하는 관성이 있습니다. 

습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오늘 내일 반복이 일어납니다. 

많이 빗나가고 잘못되어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달려갑니다.

 

신학전공한 어떤 여자 분이 우리 인터넷성도로 등록하였지만 아무리 봐도 영이 구원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를 통해 기회를 주셨지만 도저히 안되어서 제명시켰습니다. 그런데 문자가 왔는데 ‘제가 신학을 전공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하고 엉뚱한 문자가 왔습니다. 

지금 지옥가게 생겼는데 그게 무슨 큰일이겠습니까? 

자신이 신학을 하고 좀 도움을 받겠다고 우리 교회 기웃거렸지만 결국 관성대로 가버립니다. 

여기 말씀에서도 다 밥 먹고 있는데 여자가 그렇게 행하면 돌아보아야 하는데 돌아보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겁니다.

다른 교파나 다른 교회가 생기면 자세히 보고 돌아보아야 하는데 안돌아봅니다. 

그러다가 지옥으로 달려갑니다. 

시몬은 지옥 가는 사람이니까 가르쳐주는 겁니다.

 

‘내가 네 집으로 들어왔으나, 너는 내 발에 물도 주지 않았다’ 

원래 손님 맞을 때 손발 씻도록 성결항아리를 두는 게 일반적인 예의입니다. 

이스라엘 관습상 귀한 손님이 오시면 다 손발을 씻으라고 물을 내놓습니다. 

성전에서 물두멍이 있는데 물 항아리, 청동대야입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들이 청동물두멍에서 씻고 회막에 들어가거나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이런 모형을 만들어 각 집에서도 다 청동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중동지방에는 사막지대라 손발을 씻어야 됩니다. 

그런데 시몬이 예수님에게 씻을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시몬은 영의 세계에서 물두멍이 없습니다. 

회개해 본적이 없습니다. 

죄를 사해본 적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천국 간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지만 한번도 씻어본 적이 없습니다. 

눈물로 죄를 사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로 말하는 것입니다. 

한번도 물을 안주었다는 것입니다. 

손발을 씻을 하나님앞에 항아리가 없습니다. 

물항아리가 없이 죄를 씻지 않고 믿으면 천국 간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죄를 씻어본 적이 없으니 죄를 씻는 사람을 보면 ‘십자가에서 해방되었는데 아직도 죄에서 해방 안되었어’ 신학교수들은 혀를 찹니다.

 ‘언제 그 많은 죄를 씻나’하고는 비웃습니다. 

교리가 사람 잡는 겁니다.

 신학 안 갔으면 눈물로 죄사함 받고 천국 가는 건데 신학 배워서 ‘아직도 복음을 못 깨달았나’ 오히려 아는 체합니다. 

바리새인이 목사급이면서 죄를 물두멍에서 한번도 씻어본 적이 없는 완전 영적으로 무지한 자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신학교수들이 이러는 줄 모릅니다. 

신학으로는 죄사함을 모릅니다. 

믿으면 다 되는 줄 압니다.

 다 지옥갑니다.

 

이 여자가 왜 등장했을까요? 

이 여자처럼 행동하라는 겁니다. 

여자는 구원받았는데, 이 여자가 안보이는 겁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예배가 거룩하게 보입니다. 

죄를 안 씻습니다. 

좋은 찬양, 좋은 기도, 좋은 말씀 들으면 예배가 마쳐지는 줄 압니다. 

이런 양상은 대한민국 신학교가 만든 겁니다. 죄 씻지 않습니다. 

죄를 씻는 것이 구원과 관계없는 줄 압니다. 

지금 신학이 잘못되어서 죄를 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줄 모릅니다. 

죄사함이 십자가에서 구원받으면 끝난 줄 착각하고 삽니다. 

하나님과 관계 자체가 없는데 반복적으로 신앙생활 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신앙도 모르고 무지하게 신앙생활합니다. 

여자의 행동을 배우려하지 않고 오히려 ‘왜 저렇게 믿나’ 마음으로 비웃습니다.

 

대부분 지옥 가는 목사와 성도들은 진짜 믿는 사람들을 이해 못합니다. 

자기가 안 하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안해보면 생소하고 이해를 못합니다.

 눈물로 죄를 사함 받지 못하면 이것이 구원의 작은 요소인 줄 압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줄 모릅니다. 

죄를 안 씻으면 천국 못 들어가며 바로 구원은 아니지만 필수 요건입니다.

 반드시 죄를 눈물로 사함 받아야 됩니다. 

보혈로 사함 받아야 됩니다.

 

‘이 자는 눈물로 내 양발을 적셨으며’ 처음에 예수님 믿으면 큰 회개가 터집니다. 

그 때 예수님의 머리를 적십니다. 

처음에 거듭날 때 성령세례 받을 때 눈물이 터져서 머리를 씻는 역할을 합니다. 

온 몸을 대충 씻는 역할을 합니다. 

양 발은 그 다음에 지속적인 죄사함을 의미합니다. 

발을 씻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사함! 지속적인 죄씻음이 엄청난 죄사함의 근거가 됩니다. 

지금도 죄를 사함받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거듭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듭났다면 지금도 발을 씻는 죄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 제 발을 씻기실 수 없어요’

 예수님은 ‘내가 씻어주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 

말씀하십니다.

 온 몸을 씻어도 발을 씻기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거듭났다, 

성령세례 받았다, 

은혜 받았다가 구원이 아닙니다. 

그거는 당연한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양발을 씻는 죄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결의 죄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결의 죄사함의 용서가 반복적으로 없으면 하나님과 나와 끊어졌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과거에 은혜 받아서 생명책에 이름이 있어도 죄사함 받지 않으면 이름이 지워집니다. 

주님의 양 발을 씻는 것은 큰 몸을 씻는 죄사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짓는 죄를 씻는 것을 말합니다. 

발은 매일 씻습니다. 

이 여인은 구원의 대명사입니다.

 이 여인은 과거 온 몸을 씻은 경험이 있지만 매일 지금도 발을 씻습니다. 

죄를 매일 사함 받는 성결의 죄사함이 있습니다. 

속죄 속에는 성결의 죄사함이 필수조건이 됩니다. 

이것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마태복음은 죄에서 돌아서는 회개가 강조됩니다. 

얼만큼? 

온전하게 될 만큼 필수입니다. 

완전하게 돌아서며, 동시에 내가 죄에서 용서받는 양 발을 씻는 것처럼, 성결의 죄사함이 죄사함의 요체가 되는 것입니다. 

시몬은 천국 간다고 생각하는 자칭 훌륭한 지옥 가는 크리스챤입니다. 

이 여자는 남들보다 죄인이지만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천국 간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보기에 훌륭하다 아니다 평가합니다. 

하나님이 지독한 바리새인이라고 하시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 지옥가면 지옥불이 아주 팔팔 끓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죄사함을 모릅니다. 

회심을 과거 행사로 압니다. 

회심이 구원이 아닙니다. 

오늘도 여전히 나한테 회심이 일어나야 하고 여전히 죄를 사함 받아야 합니다. 

구원 안에서는 항상 물두멍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항상 손발을 씻으며 죄를 씻는 겁니다.

 

‘그녀의 머리털로 씻었다’ 

왜 머리털일까요? 죄를 낱낱이 씻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낱낱이 죄악들을 씻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안의 죄악의 요소는 한 사람의 죄의 종류만 하더라도 2,3백개 됩니다. 

죄악의 행함 입술의 죄, 마음의 죄, 생각의 죄들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죄악들을 낱낱이 눈물로 사함 받아야 합니다. 

죄를 한번 눈물로 용서해주세요 한다고 사해지지 않습니다. 

애통과 통회가 되어야 합니다. 

입술로는 안됩니다. 

누구를 죽여 놓고 그 아버지에게 찾아가 그냥 ‘용서해주세요’ 

한다고 쉽게 용서해줄까요? ‘

잘못했어요’하고 아주 애달픔으로 용서를 빌어도 그 피해자의 아버지가 용서할까 말까입니다. 눈물 흘린다고 다 죄사함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기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쉽게 용서를 안 하십니다.

 

지금 많은 목회자들이 눈물 한번 흘린다고 용서 다 받은 줄 압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하시지 인간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받을 때까지 울어야 합니다. 

탄원해야 합니다. 

애통해야 합니다. 

용서 안 받았으면서 스스로 용서받았다고 착각하며 살다가 지옥 떨어집니다. 

하나님은 용서한다고 말씀안하셨습니다. 

용서의 증거가 보여야 됩니다. 

내가 죽인 사람의 아버지를 찾아가 잘못을 빌고 눈물로 애통하면 그 아버지가 용서의 표시로 안아줍니다. 

용서받으면 내면 깊은 곳에 참 평안이 임합니다. 참기쁨이 임합니다.

 용서가 안 받았기에 참 평안과 참 기쁨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면 참기쁨과 참평안을 느낍니다. 

안 받았으면서 혼자서 착각하고 사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용서 받을 때까지 수많은 죄를 다 사함 받아야 합니다. 

우리 발은 매일 먼지가 묻듯이 매일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매일 죄를 씻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결의 죄사함이 온전한 죄사함의 큰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또 용서의 근거가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가? 지금도 용서받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에는 ‘내가 사도 중에 작은 자다’ 

하지만 나중에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합니다. 점점 죄사함이 많아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점점 낮아져야 하고 죄사함을 받는데 점점 엎드려져야 합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가면 ‘나는 잘해’ 올라갑니다. 

가짜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져서 죄인중의 괴수라고 표현한 바울처럼 통회가 강해져야 합니다. 통회가 약해지면 가짜입니다.

 세상일도 닦는 일을 하는 사람은 갈수록 잘 닦아갑니다. 

세상 일도 진짜는 점점 잘 해 갑니다. 

영적인 일도 시간 지나면 점점 죄사함 받는 일이 늘어갑니다. 

얄팍한 죄사함의 눈물을 흘린 것으로 고개세우는 사람은 다 지옥 갑니다.

 

이 여자는 큰 죄를 눈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눈물로 죄사함 받는 것이 형상화되었을 뿐입니다.

 눈물의 죄사함, 성결의 죄사함이 계속 있어야 됩니다. 

성결의 죄사함이 속죄의 죄사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속죄의 죄사함의 필수조건이 됩니다. 

죄사함은 성결의 죄사함과 속죄의 죄사함 두 가지가 있습니다. 

속죄의 죄사함이 이신칭의입니다. 

이신칭의는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에 더해서 눈물로 죄를 사함받는 반복되는 행동이 속죄의 근거가 됩니다. 

속죄 받는 것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해야 될 것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다 생략하고 머리로 믿는 신앙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것이 현대판 기독교입니다. 

개독교입니다.

 

저희교회는 개신교가 아닙니다. 

이미 개신교는 구원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카톨릭의 변화를 아시죠? 

마찬가지입니다. 

지옥가는 목사들이 기독교를 흩어버렸습니다. 참말씀이 없습니다. 

저희교회는 그냥 기독교며 엣센파식 기독교입니다. 

예배때 눈물로 회개하며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이 시대 구원의 방주로서 이 교회를 세우시고 저를 택하신 것입니다. 

신학도 하지 않고 목사안수도 안 받는 저를 부르신 것은 이 시대가 다 지옥 가니까 이 시대를 깨우기 위해 망치로서 쓰시는 것입니다. 

저는 잃어버릴 것이 없이 아쉬움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처럼 이 시대 외치는 ‘외침’입니다. 

성경의 근거를 대며 지옥 간다고 외칩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 안했으면 몰라서 지옥 갔을 겁니다. 

저는 성경을 연구하고 많이 깨달았기에 알기에 외치는 겁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저를 쓰시는 겁니다. 

왜 지옥 가는 지 성경들을 통해서 이유들을 압니다.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학을 했으면 몰랐을 겁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번역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지옥에 간다는 것을 깨달으면 저의 메시지를 듣고 정신이 번쩍 뜨일 것입니다. 딴 교회는 지옥 간다고 이야기해도 아무 근거 없이 말합니다. 

지옥가면서 천국 간다고 확신하는 수많은 개신교들이 다 지옥 가는데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 다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여자를 봐야 됩니다. 
이 여자처럼 되어야 합니다. 
이 여자처럼 매일 죄를 눈물로 사함 받아야 하며 낱낱이 용서받아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반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속죄의 죄사함 안에 들어 있는 것이지 더 이상 회개 안하면 끊어진 증거입니다. 다 지옥갑니다. 
마치겠습니다! 


*십계명을 어기면지옥갑니다!
   micl31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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