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48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248절

 

너는 내게 입맞춤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는 내가 들어와서부터, 내 양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다.

 누가복음 248절 말씀입니다.

 ‘너는’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 시몬입니다. ‘내게’ 예수님입니다.

 ‘입맞춤을 주지 않았다’ 

중동사람들은 인사할 때 어깨를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포옹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면 살짝 입을 댑니다. 

애정표현입니다. 

애기들을 보면 사랑스러우니까 뽀뽀를 합니다. 인간은 애정표현이 본능적으로 입맞춤이 나오게 됩니다. 

남녀 간에도 사랑하기에 키스를 합니다. 

키스는 좋아하고 사랑하기에 나타납니다.

 

‘입맞춤을 주지 않았다’ 

시몬은 중동지방의 관습대로 사랑의 표시로 입맞춤을 해야 되는데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열심히 배우기는 하는데 사랑이 없습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찬양하고 설교하고 헌금하고 다 해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지옥 가는 크리스챤들은 머리로는 다 알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하나님을 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머리로는 알지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참 아이러니 합니다. 

믿음을 사랑과 따로 생각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믿는 겁니까?

 

아내 되는 성도 분을 따라 목회하신 아주 점잖으신 분이 오셨습니다. 

첫 날 손을 얹었는데 하나님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찬송 부르며 손들고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 주에는 ‘높은데서 내려와서 겸손하게 회개하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도’라고 부르며 목사라는 호칭을 떼어냈습니다. 

세 번째 주는 은혜가 들어갈까 말까 합니다. 네 번째 주는 자신이 다 배웠으니 그만 나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화상에서 ‘목사님! 마지막 기회인 저희 교회 떠나면 지옥갑니다’ 

이 분이 회개의 눈물도 흘리시지 않았으면서 뭘 배운 걸까요? 

예배형태와 양식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미친 목사들 투성입니다. 

지옥에 들어가야 정신차립니다. 

말씀을 어떻게 전개시키고, 기도를 어떻게 하고, 헌금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찬양하고 이런 것들이 예배인 줄 압니다. 

이런 것만 연구합니다.

 

예배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없고 머리만 있으면 예배가 아닙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초청할 때 돈이 듭니다. 

가르침 받을 때 충실하게 왔다갔다 가르침 받습니다. 

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타종교와 다릅니다. 

타종교는 어떤 신에게서 복을 받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방법들이 나온 것이지, 방법이 목적은 아닙니다.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어떻게 무엇을 하고,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 안에서 찬양이 나오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내 안에 기도가 올라오고, 말씀이 솟아 올라옵니다. 

말씀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회개도 안하면서 무엇을 다 배웠다고 말할까요? 

지옥 가는데 무엇을 배웠다고 할까요?

 

저는 영분별 의뢰를 해오는 교회나 목사들에 대해 되도록 안할려고 합니다. 

대부분 다 지옥갑니다. 

지옥 간다고 말하면 싫어합니다. 

평생을 믿고 섬긴 자기 교회 목사가 지옥 간다고 하면 저를 믿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성도분이 의뢰하셔서 할 수 없이 해드렸는데, 의뢰한 목사의 은밀한 죄가 얼마나 많은줄 모릅니다. 

가난한 사람 무시하고 돈을 치부하고 한도 끝도 없이 많았지만 제가 열 받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목사를 아주 미워하시는데, 사람들은 그 목사한테 가면 병 나으니 많이 찾아가고 존경합니다.

  은사가 구원이 아닙니다. 

이런 저질 목사 못된 목사들이 한국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은사 있다고 좋아하지 마십시오. 

또한 종교의식에 빠진 목사들 좋아하지 마십시오. 

성경지식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바리새인은 성경지식이 많은 사람입니다. 

달달 암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습니다.

  초신자가 성경 몰라도 은혜 받아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면 속으로 비웃습니다. 마음으로 충성하고 봉사합니까? 

교회에서 성경지식에 빠지고 음악에 빠지고 치켜세워주거나 직분이 있으면 활개치고 돌아다닙니다. 

교회생활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방도 닦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해주고 사랑하기에 기다립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형식만으로 예배드리다 나오는 겁니다. 

이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교통의 입맞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목사입니다. 

성경 연구하지만 애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자는 내가 들어와서부터, 내 양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 당시 발은 샌들 신고 다니며 사막의 흙이 많이 묻기에 아주 지저분합니다. 

거기에 입맞추는 겁니다. 

아주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는 겁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내가 목사인데, 내가 장로인데, 신학교수인데, 내가 기도원 원장인데...합니다. 

이 바리새인은 낮아져서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사하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가장 낮아져야 됩니다. 

낮아지면 눈물이 날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이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낮아지지 않으니 건성으로 합니다.

  건성으로 키스합니다.

  이 여인이 가장 낮아진 것은 예수님의 발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우리에게 귀합니까? 

이 여인은 왜 예수님을 귀하게 여겼을까요? 

구원받으면 예수님이 아주 귀하게 느껴집니다. 너무 귀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낮아져서 예수님의 발에 입맞추는 겁니다. 

나는 중요하지 않고 나의 이름과 축복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나의 귀한 분으로 여겨집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가장 낮게 포복해서 하나님앞에 절하는 겁니다. 내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이마를 땅에 대는 것이 경배입니다. 

너무 높으시기에 하는 행동입니다.

  예배드릴 때나 기도할 때 뻣뻣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친구처럼 대합니다. 

하나님께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너무 높으셔서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하나님이 무서워서 ‘아버지’ 란 소리가 잘 안나옵니다.

 

하나님의 발 때도 안되는 존재가 인간인데 하나님을 우습게보고 기도를 함부로 합니다.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을 기계로 보며 함부로 기도하거나 미사어구의 말이 안나옵니다. 

낮아지면 그런 말 못하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살아왔기에 하나님앞에 나아올 수 없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보시지 마시고 낮아지십시오. 낮아지면 말 못합니다. 

엄마가 무서워서 말을 못해야 되는데 엄마한테 함부로 말대꾸하는 것은 교만한 겁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기도가 어려운 겁니다. 

찬양도 부르기가 어려운 겁니다. 마음을 다해서 낮은 자리에서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고 또한 말씀을 들을 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부모가 말씀하는데 ‘엄마 말이 좋아요, 엄마 참 말씀 잘 하시네요’ 

순종하지 않고 듣기만 합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겁니다. ‘말씀 참 잘 전하시네요, 

말씀이 좋아요, 

말씀이 은혜로워요’ 

이런 것은 미친 짓입니다. 

신앙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말씀은 나한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아멘!’ 해야 됩니다. 

정말 낮아지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결단과 각오를 하는 이것이 바른 자세입니다. 

아버지가 훈시하는데 ‘음 괜찮네’하고 또 만나서도 또 그러면 과연 아들일까요?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무너집니다. 

엄숙해지고 경건해지고 낮아집니다. 

목사님이 설교 할 때 화를 내든지 웃으며 하든지 하나님 말씀 앞에 고꾸라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가는데 ‘말씀을 저렇게 푸네, 말씀 잘 전하네’ 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만큼은 아멘!하며 순종하는 마음자세가 예배입니다. 

현대 예배는 그런 예배가 아니라 인본주의가 되어 예배를 즐깁니다. 

백날 그런 예배드리고, 그런 설교 백날 들어도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그런 예배는 다 쓰레기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열 받아 하십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달아오릅니다. 

자녀가 맞먹으면 부모가 열 받습니다. 

예배는 신령하기에 함부로 드리지 마십시오.

 예배를 빠지면 안된다에 집중하지 마시고 제대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장 낮아질 때, 그 때 높으신 예수님이 영광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는 것이 예배인데 예수님을 낮추어서 예수님과 맞먹습니다.

 자녀들도 예배를 흉내냅니다.

 부모가 예배의 본을 잘 보이면 애들도 예배를 잘 드립니다. 

모태부터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부모가 예배를 가르치지 않으면 예배시간에 떠들고 놉니다. 

예배를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 따라옵니다. 

예배가 망가진 이유가 아무도 예배의 참본을 보이지 않는 이유도 있습니다.

목사부터 진심으로 영으로 예배드려야 성도들도 따라옵니다. 

마음으로 안 드리면 누가 따라옵니까?

 마음으로 예배를 안 드리면 지옥갑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예배를 드린 겁니다.

시간 때우기 식 예배는 그만 두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많이 오면 교회가 돈이 쌓입니다. 

ㅇ하지만 교회가 부자가 되어야 합니까? 

성도가 부자가 되어야 합니까? 

성도가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카톨릭 번성 때도 성도들 것 다 모아서 건물 화려하게 짓습니다. 

신부만 부자고 목사만 기름지고 부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온전한 예배로 돌아서야 되는데 주님의 발에 입 맞추는 것이 사랑과 겸손입니다. 

낮아지면 예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시고 선포하십니다.

 

저희 교회가 토요예배와 주일예배를 공개하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는 공연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른 교회와 다른 점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열납되는 것입니다. 

애기 때부터 잘못된 예배를 드리면 그게 정상인 줄 압니다. 

저희 교회 와서 예배의 맛을 보십시오. 

그러면 이 예배가 진실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면 성령님이 역사해주십니다. 거기서 참된 기쁨이 옵니다. 

또 무엇이 거짓인 지 보입니다. 

참된 기쁨은 참된 예배에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겸손해지면, 하나님이 위에서 은혜를 부어주시고 우리 영혼에 희락과 만족과 충만함으로 만져주시고 거룩으로 채워주십니다. 
이 여자는 찬양도 모르고 교회도 모르고 말씀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구원자로 섭니다. 
반대로 이 바리새인은 성경도 많이 알고 교회도 많이 알지만 아직 신앙이 없습니다. 

눈이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진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진짜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어떠한지 보고 싶습니까? 
제가 대변해드립니다. 
가장 더러운 놈들, 가장 더러운 목사들이 교회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지옥가면 가장 밑에 들어갑니다. 
마치겠습니다!

*십계명을 어기면지옥갑니다!
  micl31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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