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263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억성경 누가복음 263절 말씀입니다.

 

바위 위의 것들은, 들을 때 기쁨으로 말씀을 받으나, 이들은 뿌리가 없어, 한때 믿으나 시험의 때에 떠나간다.

 누가복음 263절 말씀입니다.

말씀을 뿌렸는데 길가에 떨어지고, 어떤 것들은 ‘바위 위의 것들은’ 바위위에도 떨어졌습니다. 

‘들을 때 기쁨으로 말씀을 받으나’ 말씀을 들을 때 기쁜 것은 영의 현상입니다. 

처음 교회 다닐 때 행복합니다. 

그래서 찬송가가 막 나옵니다. 

하지만 이것은 구원은 아닙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 오는 현상일 뿐입니다. 

말씀은 하늘의 것입니다. 

하늘의 것은 자체가 기쁨이 충만하기에 우리 마음에 기쁨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으로 착각합니다. 

이것은 하늘의 은혜로 가는, 구원으로 가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감동이 임해서 감정에 취할 수 있는데, 구원은 너무나 어렵고 구원은 아주 나중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여기서 기쁨은 구원으로 가는 과정 가운데 말씀이 우리 마음에 심겨질 때 오는 현상입니다.

 

‘이들은 뿌리가 없어’ 바위 위라 물을 빨아들일만한 곳이 없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 믿고 은혜가운데 들어갈 때 물이 없어 즉 말씀이 없어 말라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지속력의 문제입니다. 

말씀이 올 때 깨달아질 때가 오는데 은혜가 와서 너무 기쁩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버립니다. 

교회를 다닐 때 1년 2년은 기쁘게 다니지만 그 이후에는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과 찬양, 기도도 좋은데, 이것들을 구원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안 받았는데, 구원이 아직도 멀고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내가 이미 다 깨달았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앞 구절에서 말씀드렸듯이 28년 신앙생활 한 분이 연락하셨는데 그 분의 신앙도 가짜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자신이 겉으로 보기에 높다고 생각하기에 정체되어 있는 겁니다. 

신앙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고 자신이 알고 있는 얄팍한 신앙을 가지고 신앙으로 오해하기에 더 이상 뻗어나갈 마음이 없는 겁니다. 

깨달은 말씀이나 자신의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전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이 전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성경 66권내용이 엄청 깊습니다. 

몇 장만 알고 몇 절만 깨닫고 전부라 압니다. 

그래서 길이 없습니다.

 

구원은 성경을 거의 깨달아야 옵니다. 

성경 몇 장 깨달을 것을 전체를 다 안다고 생각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교사하고, 성가대하고, 집사와 장로합니다. 

가르침은 깊고 깊은 것을 알아야 되는데 조금 알고 됐다고 교회에서 집사 시키고 봉사 시킵니다. 

깊은 것을 목사가 주지 않습니다. 

예배 잘 나오고 헌금 잘 내면 교회는 보통 인정하고 세례주고 학습 줍니다. 

그래서 믿음이 쉬워 보입니다. 

예배, 헌금, 세례, 봉사, 성가대, 주일학교교사, 전도회, 청년부회장하고 하지만 뿌리가 없습니다.

 

뿌리는 하나님이 나한테 알려주고자 하시는 많은 영적 양식이 있습니다. 

그것을 안 먹는 겁니다. 

두 가지입니다. 

가르쳐주는 이가 몰라서 못 먹는 겁니다. 

ㅇㅇㅇㅇ교회 목사님은 구원받는 자지만 말씀이 없어 성도들은 대부분 영적으로 난쟁이들입니다. 

ㅇㅇ교회 목사님은 구원받았지만 성도들은 쓰레기 강사 초청으로 인해 쓰레기장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 가르치고 교리를 가르치고 교회자체에서 만든 단행본 책을 가르칩니다. 

설교도 깊은 내용이 없고 짧은 내용으로 반복하니 성도들의 신앙이 안 자랍니다. 

기쁨으로 시작하지만 반복되니까 교회를 1년 다니나 10년 다니나 영적수준이 똑같습니다. 

1년 다니면 교회를 알고 10년 다니면 교계를 알 정도로 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딜레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는 매주 구약 창세기부터 한 장씩 원어로 해석하며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보통 교회들은 한 구절이나 몇 절씩이나 설명 잠깐 하고 끝나버리니 더 이상 영이 안자라고 구원을 못 받는 겁니다. 

매일 새로운 말씀을 접하고 새로운 은혜를 받아야 되는데 영적진행이 안되는 겁니다. 

‘한때 믿으나’ 한 때 다 믿습니다. 

‘시험의 때에 떠나간다’ 

교회 자체를 떠나는 것도 있지만 믿음에서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좋은 관계 속에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친한 것이 믿음입니다.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믿음이지만 친구와 이야기 하다가 기분 나빠서 친구를 차단합니다. 

떠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통신이 안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상달되고 내려옵니다. 

이것이 없으면 믿음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시험의 때에 떠나갑니다. 

시험은 내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자꾸 악화되는 것입니다. 

주일날 장사를 하는데 장사가 잘 되니 교회를 빠진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끝나버립니다. 

주변에 주일날 결혼식이 자주 있어서 참석하고, 기도하다가 바쁘다고 기도할 시간을 내지 않으면 믿음이 떠나 가버립니다. 

하나님과 나와 교통의 세계가 끊겨진 것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몸이 교회 있어도 영이 떠나면 믿음이 없는 거며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교통하는 상황, 하나님과 얘기하고 감동받기도 했는데 그게 떠나가면 맨숭맨숭합니다. 

누가? 목사가, 장로가, 성가대 인도자가, 직분만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통이 없으면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유혹과 핍박을 못 이기면 마음이 딴 데 갑니다. 이쁜 여자들 보면 마음이 왔다갔다 하고 청년들은 결혼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이 왔다갔다 합니다.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내 앞에 항상 계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항상 내 위에 계셔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성령님에 의해서 죄에 대해 애통이 올라오기도 하고 하나님의 감동이 와서 어떤 것을 선택하기도 하고 성령님의 간섭이 늘 내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갈등합니다. 

성령님이 떠나가면 아무 감각이 없고 몸만 왔다갔다하는 머리만 차는 교회생활만 될 뿐입니다. 몸이 교회 온다고 헌금 드린다고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이상하게 믿는다고 하나님의 감동을 무시합니다. 

헌금을 얼만큼 해야겠다, 

기도를 얼만큼 해야겠다, 

어떤 말을 했는데 잘못된 것 같다, 

뭔가 간섭이 있습니다. 

여러분 간섭이 있습니까? 

남녀도 만나면 서로 간섭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안되고 하나님의 간섭이 없습니다. 

기도해도 회개할 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릅니다. 

답답하고 메마른 것이 떠난 것입니다.

 

신앙이 내가 일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 때문에 내가 마음이 아플 수 있고 좋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그런 것처럼 하물며 하나님이 내 위에 머무시는데 내가 일방적인 것은 떠나가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이 내게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왔다갔다 해야 합니다. 

양심에 걸리기도 하고, 하나님 앞에 못 산 것 같아 걸리기도 하고,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져야 합니다.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어떤 분에게 손을 얹었는데 ‘니가 나를 선택하기를 원한다’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안 보이는 관계이지만 아무것도 없고 설교 듣고, 찬송 드리고, 기도만 하는 것이 전부라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죽은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산 종교이며, 뭔가 감각이 있습니다. 때로는 죄 때문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잘못한 것 때문에 애통이 되기도 하고 찬송 부르다가도 눈물이 나오고 목이 메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찬양 부를 때 그냥 즐거움으로 부른다면 찬양이 아니라 노래이며, 

성가대에서 진실된 마음 없이 사람앞에서 노래하는 것은 열린 음악회와 같으며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난 것입니다. 

찬송가 가사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면 마음이 움직여집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부르면 감격이 와서 찬양을 부르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대화 하다가 감동 받으면 말을 못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지금 시대는 죽은 예배입니다. 

기도도 혼자서 다다다다 하다가 끝나면 훌훌 털고 갑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하는데 감정이 없습니까? 차라리 돌이나 나무 앞에 하십시오. 

기도를 잘못 배워서 하나님을 목석으로 압니다. 지금 기도원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과 교감이 안되니 눈물도 안나고 소리만 막 지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떠난 겁니다. 

사람도 대화하다가 혼자만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말하다가 감정이 오면 말을 못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인격이시라 똑같습니다. 

혼자 말하며 기도하는 것은 앵무새와 같습니다. 산기도하는 사람들도 이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은 어떤 존재 앞에 서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이 인식이 됩니까? 

하나님은 하늘 위에만 계신 분만 아니라, 여기도 계시고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늘 함께 하시고 그리고 인격이십니다. 분노하시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시며, 슬퍼하시기도 하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격이신 하나님앞에 나아가지 않고 기계적으로 나아갑니다. 

목사들이 설교를 문장으로 만들어서 설교를 읽습니다. 

성도들은 그런 짜여진 설교에 은혜롭다고 합니다. 

설교는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잘 연구하고 잘 깨달아서 성도들에게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아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꾼이나 성가대나 목사나 듣는 성도나 다 기계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으면 그렇게 못 합니다. 

말씀을 전하다가 감격이 오면 말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도 감동이 오면 말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세리의 기도처럼 내가 죄인이라는 하나님앞에 인식 때문에 눈물만 흘릴 때가 많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찬양을 못 합니다. 

여러분 누구 앞에 서 있고 누구한테 잘 보이려 합니까? 

신앙은 하나님께 보이는 겁니다. 

한때 여러분도 은혜가 있었습니다. 

눈만 감아도 감동의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감동으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없으니 머리 채우려고 자꾸 새로운 것을 찾아 헤멥니다. 

신앙은 뭔가 자꾸 나에게 감동이 와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감화는 교통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끝났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위에서부터 명령이 주어지는 것이며 거기에 따라 내가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살라’는 감동으로 사는 것입니다. 

군대의 쫄병이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대대장이 전진하라 명령할 때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성령님에 의해 우리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계시와 음성을 주시면 ‘어떻게 해야겠다’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를 운영할 때도 하나님의 감동이 오면 성도들에게 말씀드리고 순종하며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안보이시지만 오는 것이 있습니다. 

왔다갔다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오가는 것이 없으면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게 됩니다. 

바위가 딱딱합니다. 

기계적이 됩니다. 

여러분 이제는 신앙생활 하실 때 성령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요? 

누구를 만나야 할까요?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내가 어떻게 될까요?’ 

답은 한가지입니다. 

성령님에 의해 지시를 받고 내가 움직이면 되는 겁니다. 

지시가 없고 감동이 없다? 

바위 위에 심겨진 씨앗입니다. 

천국이 어렵습니다.

 

천국 가는 사람은 천국 갈 때까지 계속 뭔가 주어져야 됩니다. 

과거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떠난 겁니다. 

지금도 지속되어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원래 그래’ 그런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제는 강해져야 합니다. 

처음에 은혜가 있어도 점점 은혜가 강해져야 합니다. 

처음에 한번 울었으면 이제는 매일 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사라졌다는 것은 시험이나 유혹이나 핍박 때문에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바위 위에 있으면 지옥 갑니다.

 

생물은 항상 살아 있어야 합니다. 
꽃도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피고 지고 반복합니다. 
신앙이 가만히 있으면 죽은 생물과 같이 죽은 것과 같습니다. 
신앙은 자기도 모르게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은 죽은 것이며 살아있는 신앙은 계속 변화가 됩니다. 
나무도 쭈욱 자라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습니다. 
변화가 없는 것은 여러분의 신앙이 바위 위에 있는 것입니다. 
바위 위에 있는 것은 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며 지옥행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십계명을 어기면지옥갑니다!
  micl3154@gmail.com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8장484절강해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1장3절 강해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1장5절 강해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 (죄사함의조건:회개)1장4절 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8장463절강해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 1장6절 강해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4장150절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