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302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302절

 

그 분이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누가복음 302절 말씀입니다.

‘그 분이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딸아!’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딸아’입니다. 

성경에서 ‘딸’은 구원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피를 흘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로서 받아준 것이고 그 문제 때문에 고민할 때 문제해결을 뜻하는 ‘안심하라’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에서 해결을 주니 ‘안심하라’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딸아’ 가 중요합니다. 

유사기독교도 얼마든지 표적이 일어납니다. 

그런 현상들에 속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현상이 아니라 본질에 맞추십니다. 

그래서 ‘딸아’가 중요합니다. 

구원이 중요합니다. 

이 혈루증 앓았던 여인이 병 낫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낫는 과정가운데 구원확증이 중요합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너 병 나았어’가 아니라 

‘너 구원받았어’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통해서? 

믿음으로! 

그러면 병 나으면 구원받나? 

아닙니다. 

포인트는 신유가 아니라 구원에 있습니다. 

내가 병이 걸려 병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다보니 그 병 때문에 구원받습니다. 

치료의 과정을 통해 받는 겁니다. 

병과 싸우다가 구원얻는 믿음을 얻게 되고 그 믿음 때문에 구원 얻는 것입니다. 

본질은 구원에 있습니다. 

군중 중에 병이 나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취급도 안하십니다. 

이 여자만 취급하시는 이유가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를 만날 때 그것이 구원에 이르게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고난이 유익하지는 않지만 고난을 통해서 구원을 줄 수 있습니다. 

고난이 해결의 중심이 아니라, 

고난에서 축복으로 바뀔 뿐 아니라 거기서 구원을 얻기에 고난이 귀한 겁니다. 

고난에서 구원을 얻는다고 고난이 귀한 것이 아니라 고난에서 구원을 줄 수 있을 때 그 때 귀한 겁니다. 

많은 분들이 고난을 통해 복 받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이 나에게 구원을 주냐가 중요합니다. 

복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구원을 주느냐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성경은 다 구원에 연결된 부분만을 이야기 합니다. 

이 여자 말고도 그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침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하십니다. 

신유가 본질이 아니라 구원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혈루증이 나았을 뿐 아니라 구원도 얻었는데 중요한 것은 중간에 들어간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나한테 원하시는 것을 내가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3시간 기도를 해도 마음대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믿음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기도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문제가 왔을 때 원하시는 대로 내가 어떻게 반응 하느냐입니다. 

구원은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반응을 하면 할수록 구원이 결정됩니다. 

똑같이 신앙생활해도 누구는 천국가고 누구는 지옥 갑니다. 

잘못된 반응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모든 결론이 구원으로 나야 됩니다.

 

어떤 분이 데이빗 윌커슨 목사를 물어보셨습니다. 

그 분은 유명하고 회개를 외치는 분이셨지만 하나님이 ‘흑암가운데 있다’ 하셨습니다. 

흑암은 지옥입니다. 

물어보신 분이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하셨습니다. 

남 보기에 회개와 좋은 일에 애쓰시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과 기준에 미달된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아 ‘네 자식 바쳐라’ 도달되니까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나 교회 다녀, 나 변화 받았어, 나 헌금 드려, 나 음성 들어’ 이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도달되는 것입니다. 

경주자로 골인점에 도달해야 됩니다. 

이 여인이 12살 때부터 혈루증으로 의사찾아 이리 저리 고생하다가 믿음이 생겼으며 결국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데 까지 도달된 것입니다.

 능력이 나간 것입니다. 

믿음은 최종점에 도달되는 것이지 만약 이 여자가 예수님을 사모해도 능력이 안 나타나면 아직 믿음에 도달 안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능력이 나올 정도로 믿음이 도달된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이 언니를 물어보시는데 그 분도 ‘흑암가운데 있다’ 하셨습니다.

 신학도 하고 믿음도 좋고 음성도 듣는 분이셨지만 흑암, 즉 지옥 가셨습니다. 

신학하고, 목사하고, 하나님의 음성 듣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도달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도달되는 과정이 막판에 있는데 십자가까지  도달되어야 구원받는데 자기 변화의 십자가를 각자 지고 거기서 완전히 자아가 죽고 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에 완전히 들어야 됩니다. 예수님도 신이시지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사항에 끝까지 도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이 여인이 12살 때부터 혈루증으로 고생하며 시달리다가 영적인 진보를 이루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서 능력이 자신에게 도달된 것입니다. 

그 때 선포된 말씀입니다. 

그 때 ‘너는 나의 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에게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 

아브라함은 일찍부터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고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이제야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된 것입니다. 

구원은 기준에 도달되는 것입니다. 

커트라인 점수가 있습니다. 

도달 안 되면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왜 구원을 받았느냐?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구원의 커트라인을 넘어섰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평안히 가라’ 하십니다. 

병 나은 것 때문에? 아닙니다. 

구원 때문에 평안히 가라고 하시는 겁니다. 병 낫는 것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병을 낫게 했기에 안심하고 구원받았기에 평안히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와 상황 속에는 구원의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질병이건 물질이건 다 구원에 얽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면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본질인 구원도 얻게 됩니다. 

이 구원은 ‘질병에서 구원이야’ 하는데 아닙니다. 

구원은 명백히 구원입니다.  

질병에서 건짐, 구원은 헬라어원어에 따로 나옵니다. 

질병에서 구함이 아니라 완전히 구원받은 겁니다. 

치료를 통해 확증된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에는 구원이 포인트가 되어야 합니다. 

암이 즉시 나아버리면 오히려 구원 잃어버립니다. 

바로 안 나았으면 막 기도하면서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을 것입니다. 

영적인 포인트는 다 구원에 있지, 절대 신유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 가운데 구원에 이르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사역도 사역의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직분을 통해 그런 과정을 통해 구원받으라는 것입니다. 

떨어지면 다시 구원을 받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직분, 부흥, 치유 이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끝까지 과정 이수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다 이수하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 하나님이 ‘엎드려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회개의 문이 터져야 하는데 등에 기대어 기도하면 기도가 잘 안됩니다. 

그래서 엎드려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과정을 이수해야 구원에 이릅니다. 

내가 어느 순간 구원받았어 이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의 과정을 이수해야 됩니다. 

계명을 순종하고,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변화를 받아 구원을 선포 받는 겁니다. 

모든 포인트는 구원입니다. 

구원을 받는 과정에서 이탈이 많기 때문입니다. 은사, 계시, 성령세례, 거듭남도 구원을 받는 과정가운데 있습니다. 

‘평안히 가라’는 천국입니다. 

병도 낫고 평안함도 얻고 천국 가는 것입니다. 모든 축복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온전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단순히 한가지 응답받았다고 기뻐하면 안됩니다. 

응답이 있지만 응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가운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통과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기쁘시게 하는 증거가 단순한 한 가지가 아니라 쭈욱 사항들이 이어집니다. 

계속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꿈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꿈은 죽을 때까지 천국 가는 데까지 계속 환란이 있는 꿈이었습니다. 

천국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많은 영적 위기들이 따라옵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이겨서 레일안으로 인도되어 딸을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끝까지 가야 됩니다. 

교계지도자들이 위험성이 많기에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따른다고 같이 따라가다가 같이 지옥갑니다.

 

저도 계속 구원가운데 있어야 사역의 길이 열립니다. 

구원 안에 있어야 사역이 멈춰지지 않습니다. 저는 1차 구원의 선포를 받은 상태기에 유지하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저도 안수를 받으며 점검받아야 합니다. 

신앙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지 믿음으로 가는 길에서 섞일 수 있기에 바짝 긴장하는 겁니다. 

사람은 영적으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누구나 연약합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긴장하는 겁니다. 

저는 항상 부족하기에 늘 웁니다. 

내가 섰다고 하는 순간, 내가 은혜가운데 있다 하는 순간 무너집니다. 

예수님이 나를 붙잡을 때만 은혜가운데 있는 겁니다. 

여전히 붙잡혀야 됩니다.

 

우리교회 직분을 하나님이 오르락내리락 하시게 하는 이유는 섰다고 하는 순간 내려서 긴장하게 해서 다시 올라오게 하는 겁니다. 

직분이 예측불허인 것은 천국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완전 목사, 완전 전도사는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부패합니다. 

우리는 완성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절대적인 것이 없고 예수님만 절대적입니다.

 예수님의 계시로 저희 교회는 최선을 다해 순종할 뿐입니다. 

조금 흐트러져도 책망 듣고 다시 바로 잡고 계속 올바르게 하고 전진하며 천국 가는 것이지, 구원은 완성이 있어도 구원조차도 불안하기에 항상 스스로 자꾸 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아무도 장담안되고 영구하지 않습니다. 교회들은 영원한 목사로 존재하지만 위험합니다. 

실상은 영구한 목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나아갈 때만 신앙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땅입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나아가며 구원을 이루는 것이 구원의 땅입니다. 

구원에 확신 있다? 

가짜입니다. 

구원 선포 받아도 여전히 조심하며 살아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 여자가 고통가운데 살다가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예수님이 평안을 주셨는데 이 땅이 평안의 땅입니다. 

인간의 평안은 주님이 나를 사랑할 때만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목적으로 교회를 다녀야 하고 설교를 들어야 하고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인생이 구원 가운데 있을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은혜 받았습니까? 

그것조차도 내려놓고, 다시 두렵고 떨림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매일 매일 나를 치고 복종시켜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루단위입니다. 

매일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이 이뻐하고 기뻐하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탈되면 구원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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