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6장332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332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십니다”

누가복음 332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오병이어로 기적을 베푸니 사렙다 과부에게 기름과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기적을 일으킨 엘리야로 보며, 산상수훈과 천국과 지옥을 말씀하시니 세례요한 같다고 말하고, 모든 말씀들이 깊으니 하나님을 만나는 선지자로 군중들이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실망하시고 그러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보는지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신앙이 제일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십니다’ 일단은 정답입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야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며 메시야는 히브리어입니다. 구약 내내 기다려온 분, 그리스도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보내겠다고 말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 이것은 하나님의 한 아들이라든지 사람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오신 분은 사람으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완벽한 정답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해할 때 어떤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사람을 보내어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지게 했어’ 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정답으로 고백한 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군중들은 이제까지 예수님을 엘리야나 세례요한 등 선지자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대했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친구 되시며 나의 신랑 되신 예수님으로 격화시킵니다. 

이것은 위험한 인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로 신부로 부르신 것이지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서워합니다. 

구약에서 땅이 갈라지게 하고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온갖 것을 일으키시니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크게 두지 않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작게 느낍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무서워하지만 신약은 예수님이 가까이 오신 분이고 겸손하신 분이시라 친근하게 느낍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이십니다. 

성령님도 동일하십니다. 

성령님을 우리는 자비가 많고 은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성령님이 구약에서 불순종한 이스라엘에 대해 분노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하신 분이시며 굉장히 무서우십니다. 

그리고 다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4복음서의 예수님을 대할 때 예수님을 친근하신 예수님, 나의 죄를 짊어지신 정도의 예수님, 또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나 찬양 속에서 예수님을 쉽게 부르지만 다 사단적입니다. 

예수님은 쉽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듯이 동등되게 예수님을 그렇게 불러야 됩니다. 

예수님은 엄위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동거동락하며 사시니까 사람들은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생각합니다. 선지자로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수훈을 보면서 ‘이거 지킬 수 없는데’ 말합니다. 

예수님을 격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격화시키기에 예수님을 진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을 마음에서 진짜 진리로 품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만약 정말 산상수훈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면 지켜야 됩니다. 

구약말씀은 엄위하니까 흉내는 내지만, 산상수훈은 육신의 옷을 입고 계신 예수님이 가깝고 친근하니까 사람으로 보고 말씀을 안 지킵니다. 

그 시대 군중도 마찬가지입니다.

 4복음서를 우습게 생각하고 예수님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두려운 존재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이 아주 귀한 겁니다. 

산상수훈을 지켜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구약의 십계명을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의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며 동등 되십니다.

 단지 산상수훈이 더 깊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듣지 않으면서 천국 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의 말은 다 지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은 다 진리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준수하고 행동할 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 것이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존재를 믿는 것일까요? 

사상을 믿는 걸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내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게 메시야 통치 원리입니다. 

다윗을 통해 먹을 것, 입을 것 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으로 인도되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는 그 말씀을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안 되느냐? 

선지자로 엘리야로 세례요한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산상수훈을 들을 때 이 말씀대로 살고자 결단하며 순종해야 됩니다. 

이것이 메시야 통치입니다. 

통치는 내가 순종을 통해 얻어집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통해 전부가 움직여집니다. 

통치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통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약과 무엇이 다를까요? 

이스라엘은 표본입니다. 

지금은 표본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당신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구약의 인물들이 아니라 지금도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여 무형의 한 교회, 무형의 나라가 있는 겁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이 고백은 정답을 말한 것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믿음이 없었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이런 믿음이 주어졌고 예수님을 절대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 복종하고 절대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가 아니라 절대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상황윤리나 타협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행해야 하며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할 때 그 때 구원이 임하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은 예수님을 절대 나의 왕으로 그리스도로 이해해야 되며 그 통치로 말씀대로 살 때 구원을 받기에 ,극소수가 구원에 들어갑니다. 

구원은 행위가 필요합니다. 

구원은 자기 사상이 아니라 그 행위가 통치를 받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면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로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소속되어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치 않으면서 그리스도라 말합니다. 

입만으로 감정으로 고백하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모든 말씀대로 복종하고 따라가야 진정한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생 믿음의 기회를 주지 않으십니다. 몇 번이 주어질 때 그 때 믿음으로 팍 들어가 순종으로 들어갔을 때 구원받는 겁니다. 

순종 안하고 상황으로 예수님을 이용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용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대할 때 거의 명령조로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전하는 목사를 독재한다고 오해합니다. 

예수님이 교회 머리가 되시면 명령합니다. 

성도는 순종합니다. 

요즘 교회는 ‘축복 받으라’하며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으로 갑니다. 문제해결이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그냥 해결해주십니다. 

우리는 단지 순종하는 삶으로 살면, 양이니까 알아서 해결해주십니다. 

돈 문제, 문제 해결 등은 믿음이 아닙니다. 

문제는 많은데 어떡합니까? 

딜레마입니다.

 

옛날 제가 어려울 때 목사님이 저에게 크게 헌금하라고 하십니다. 

없었지만 카드로 빼서 드립니다. 

목사님은 ‘이것밖에 없어?’ 하십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신적으로 대하는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 온갖 충성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대한 거는 다른 겁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하나님 마음에 안든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교회는 신본이며 하나님에 의해 움직입니다. 

문제해결도 해주십니다. 

하지만 도움과 혜택은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시라면 우리는 무조건 순종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교회들이 거의 없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움직입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마음이 없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 움직이기에 오직 참된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구원은 어렵습니다. 

참된 교회를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겁니다. ‘참교회가 안 받아주면 딴 교회가면 되지’ 교회들은 누구나 다 받아주니까 성도들이 기고만장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교회 머리가 정말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 못합니다. 

목사가 한 영혼이라도 받기 위해 아부를 다 하니까 성도들이 맛이 가버립니다. 

저희 교회는 하나님께 대항하면 쫓아버립니다. 예수님이 교회머리 되시기에 무조건 순종하고 복종하며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말씀에 따라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 교회에 왔다 갔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우습게보고 목회자를 우습게봅니다. 

말은 믿는다고 합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교회 머리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목사가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군중입니다.

 

교회는 절대적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고 싶은 교회로 이리저리 가면 되지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싫든지 좋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되는데 우리는 복만을 구하고 헌신을 안합니다. 

정말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 돌아가셨다고 믿는다면,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위해 나 자신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장20절)

 날 위해 목사가 존재하고 예수님이 존재한다면 인본적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바치고 드려야 됩니다.

 

한영찬송가 출판도 어떤 분의 헌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 받으면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고 무엇을 드릴까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 우리가 또 그런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은혜에 감사해서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여 무엇이든지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도 다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처음 교회 와서 혜택을 바라지만 목사나 전도사, 선교사는 교회를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선교는 영혼을 구령하는 것입니다. 

안되면 자격미달입니다. 

나중에 영적인 것을 더 쌓아서 나아가야 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드려야 됩니다.

 내 인생, 내 주관, 내 명예, 내가 추구하는 것도 없습니다

 목사가 여행 다닐 시간이 있습니까? 

내 건강, 내 지혜 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날 위해 목숨을 주셨는데 뭐가 아깝습니까? 

나도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 놓아야 합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이 좋아서 혜택을 주는 분으로 밖에 생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나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가 필요합니다.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저 깊은 내면에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내면이 바뀌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형통하게 도와주십니다. 
정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사랑하십니까?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모든 고난을 짊어지고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닙니다.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나에게 진정 하나님이신가, 어떤 그냥 좋은 사람인가, 선지자인가 자문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영광을 구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셨는데 어떻게 영광을 구합니까?
 못 구합니다. 
고난을 택하고 예수님 앞에 내 손해와 희생과 헌신을 택합니다. 
여러분이 진짜인가를 잘 생각해보고 가짜이면 돌이키십시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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