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348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348절 

 

그들은 잠잠하였으며 아무도 그들이 본 어떤 것도, 그 시기에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348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잠잠하였으며’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입니다. 

그들이 기대 밖이라 잠잠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았지만 모세와 엘리야를 더 크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해도 예수님에 비하면 세발의 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뿐이지, 예수님을 따라 가다보니 위대한 인물이 좀 되는 것뿐입니다.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우리는 예수님에 비하면 공기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은혜를 주셔서 믿음을 가지는 것뿐이며, 예수님이 깨닫게 해주셔서 말씀을 깨닫는 것이며, 예수님이 도와 주셔서 믿음을 잃지 않은 것이며,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뿐입니다. 면류관을 얻어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해도 모든 것이 은혜로 말미암기에, 하나님 앞에 우리는 할 말이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먼지에 불과하며, 아무 내세울 것 없는 인간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베드로가 기도 가운데 깨달은 것입니다. 특별히 응답받았거나 평안을 얻은 것이 아니요 예수님을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은총을 깨닫고, 탕자 된 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깨달아야만 내가 깨달아집니다. 

그 앞에서 나를 비교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배경 속에서 나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비교하면서 내 사이즈가 나옵니다.

 모든 것이 없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없고 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도우심밖에 없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네’ 점점 예수님을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잠한 것입니다.

 

‘아무도 그들이 본 어떤 것도’ 모세와 엘리야를 환상가운데 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로 들어가면 환상을 봅니다. 

또 기도생활을 하게 되면 많은 꿈을 꾸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이 들어오면 환상과 꿈과 음성을 듣게 됩니다. 

꿈도 아무나 꾸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이 와야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진짜를 보는 이것이 영분별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평가 못합니다. 

훌륭하게 보았는데 대단한 줄 알았는데 아닌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 

우리의 눈은 진실이 아니며 하나님만 진실이기에 하나님을 통해서 진실을 압니다. 

꿈을 통해, 환상을 통해, 음성을 통해 ‘아 그렇구나, 아니구나’ 아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목사님을 인간의 눈으로 아니다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평가와 우리의 눈은 달라집니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 평가 하는데 이것이 영분별입니다. 영분별은 여러분이 모르는 세계를 그대로 투영해주는 것입니다. 

지옥 갈사람 지옥 간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배생중계를 보다보면 보이던 사람이 안보이고 사라집니다. 

천국 갈 사람을 지울까요? 

절대 안 지웁니다. 

천국이 어려우니까 지우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생활로 천국 갈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여기서 빨리 순종으로 들어가며 붙어야 되는데 마귀의 시험에 붙어버리면 떨어집니다.

 핍박 때문에 넘어지면 돌밭입니다. 

넘어지면 떠밀려갑니다. 

마귀가 치고 들어오는 것을 저는 알지만 누가 쓸려가는 지 지켜봅니다. 

작은 것은 쓸려갑니다. 

남아 있는 튼튼한 것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 내버려둡니다. 

올해 2월초에 하나님이 저에게 많이 제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마귀를 푸시는 것입니다. 

쭉정이는 마귀의 공격에 허우적되며 쓸려갑니다. 

그러면 버리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귀를 못 이기면 절대 못 갑니다. 

겉으로 열매 맺는 것처럼 보이고 신앙인으로 보여도 뱀이 있으면 마귀의 자식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위장할 뿐입니다. 

시험이 오면 그것이 드러납니다. 

시험에 통과해야 다음 학교에 가듯이, 마귀의 시험에 통과해야 천국에 갑니다. 

인생에서 많은 시험들이 옵니다. 

지면 천국이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의 큰 시험으로 우리를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내십니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로 영적인 세계를 알아야 시험에 이긴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교회가 참교회인지 어떤 목사가 천국 가는 목사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환상이 오고 음성이 오고 참된 분이 와야 압니다. 

그렇다고 가짜를 보고 들으면서 믿어버리면 안됩니다.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시간이 알려줍니다. 

그리고 말씀이 증명되어서 알려줍니다. 

나중에 스스로 그것이 진짜였구나, 

가짜였구나 알게 됩니다. 

영화 시나리오를 보면 작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게 해놓고 나중에 알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가짜들은 다 욕심에 끌려갑니다. 주인공은 일반적으로 정의나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로 갑니다. 

우리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은 못하지만 가짜들은 자기의 유익이나 자기 소원, 원하는 것이 들어가게 만들어서 그것들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나중에 증명되게 만듭니다. 

영적세계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이유가 이런 영적인 세계가 보여집니다. 

환상을 안보아도 사람을 보기만 해도 그냥 어떻다 압니다. 

그냥 아는 세계가 있습니다.

 

경고를 주면 열심히 나아가야 되는데 지옥 가는 사람은 반항합니다. 

꾸중하고 매를 드는데 자식이 반항하면 남의 자식입니다. 

부모님을 아는 자녀라면 반항을 안합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자기 부모한테는 잘 합니다. 

참된 자녀는 하나님 앞에서는 다 겸손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된 자녀는 자기 목자한테 반드시 순종합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회초리를 때릴 때 참된 자녀는 곱게 맞습니다. 그 앞에 회개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교회에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이 안보입니다.

 어디가 참교회인지 안보입니다. 

그래서 기도로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면 항상 환상과 계시와 음성이 따라와서 보여 지는 겁니다. 

물론 진리는 아니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 영적세계를 바로 보는 눈이 생깁니다. 

지금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가 예수님에 대해 기도를 통해 완전한 진리를 얻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진리가 들어오며 완전한 진리를 얻었습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보게 만들어줍니다.

 

‘그 시기에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본 것을 그 때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받은 감동과 본 것이 덕이 되느냐, 유익을 주느냐 문제입니다. 

내가 깨달은 것으로 맞추어지는지, 남들도 공유하는 문제인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는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지만 은혜를 전달하는 것이 좋은 건가, 말아야 되는 건가 고려해야 합니다. 

이 당시 깨달은 것은 은혜가 안되니 안 전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깨달아도 전하다가 은혜가 안되면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감동을 전할 때가 있고 침묵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 받으면 당장 나가서 ‘바돌로매! 나 모세 봤어, 도마! 나 엘리야 봤어, 예수님 옷이 희게 되고 예수님 얼굴이 광채가 났어’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너 잘났어’ 하며 은혜가 안됩니다. 

듣는 사람들은 맹숭맹숭합니다. 

은혜가 안되며 덕이 안 될 수가 있기에 전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시기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을 때 은혜를 충만히 계속 받아야 됩니다.

 언제까지? 

전할 때까지입니다. 

성경진리를 많이 받고 은혜를 많이 받고 완숙해져서 밥이 되어야 됩니다.

 쌀이 좀 끓으니까 나 좀 먹어봐 하니 먹어보지만 체합니다. 

섣부른 은혜는 체하게 됩니다. 

환상에서처럼 총 뽑았다고 은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모든 은혜가 나한테 쌓이고 쌓여서 진리화가 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툭! 치면 진리가 나와야 합니다.

 사람은 방언하고 통변하고 예언하고 음성 좀 들으면 목이 곧아지고 뻣뻣해집니다. 

저도 2012년 하나님을 직접 만나지만 그 전에는 계속 은혜만 받았습니다.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구한테 전하겠습니까? 

은혜는 나를 향해서 끊임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성경 한번 일독 하고 은혜 받았다고 귀한 복음을 전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하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또 다른 미혹입니다.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울고 또 울고,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은혜 받고 또 은혜 받고, 은사 받고 또 은사 받고 완숙해져야 합니다. 

혹 그렇지 않아도 맞다 할지라도 듣는 자는 은혜가 안됩니다. 

진리는 완벽해야 합니다. 

오차가 생기면 안됩니다. 

손톱만큼 은혜 받고 손만큼 전하려니 오차가 생깁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손톱만큼 전하면 오차가 안 생깁니다. 

은혜를 많이 쌓아야 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일을 시키면 야망으로 말미암아 막 하지만, 은혜 받은 양보다 많이 토하면 안됩니다.

 사도 바울이 아라비아 사막에 3년 반 동안 있으면서 제자들처럼 훈련받습니다. 

제자들도 3년 반 동안 오직 은혜 받은 겁니다. 내가 은혜 받은 것에 내가 감동받아서 전하면 실패합니다.

 은혜는 계속 은혜로 들어가고, 회개도 매일 계속 회개로 들어가야 되고, 은혜가 나에게 넘쳐나고 은혜가 나를 압도할 때 하나님이 그 때 쓰시는 것입니다. 

쓰임 받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지금 본 것을 말 안하는 이유가 아무 도움이 안되고 말하다보면 또 실수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은 전하다보면 진리의 본체가 사라지고 자기 과장이 들어갑니다. 

진리가 전파되어야 하는데 자기 의, 자기가 전파되기에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완숙할 때까지 계속 은혜 받고 잠잠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대한민국 교회가 망가졌습니다. 

청년 때 방언 받고 은혜 좀 받았다고 주위 신학교 권유로 신학 했다가 망치는 사람들 많습니다. 

눈물 좀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수백 일을 흘려야 합니다.

 한 번의 은혜, 한 두번 환상 본 것 가지고, 한 번 음성들은 것 가지고 말하거나 날 뛰는 사람들 많습니다. 

미혹입니다. 

저는 수 천 번 음성 들었습니다. 

완전히 쌀이 익어야 합니다. 

은혜의 정점은 겸손입니다. 

겸손해져야 됩니다. 

은혜 받은 것들이 ‘예수님 은혜 앞에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옵니다. 

그리고 입을 다물 때 가 옵니다. 

이것이 쌀이 익은 겁니다.

 

2010년 제가 번역을 마칩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으로 회개가 들어갑니다. 2011년 12월까지 계속 회개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3년 만에 예수님을 직접 만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받은 것도 없었습니다. 

내가 바뀌고 변화된 것 밖에 없었습니다. 

개척을 명령받고 2014년, 저희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내가 미숙하면 내가 성경을 번역했네, 내가 기도 많이 했네, 회개 많이 했다고 하지만 아직 이 꼴 이 모습입니다. 

날 보면 초라합니다.

 여러분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까? 

받은 은혜가 귀하다고 느껴집니까? 

아직 멀었습니다. 

아무리 은혜 받아도, 은사 받아도, 음성을 수 천 번 들어도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오게 됩니다. 

그게 익은 겁니다. 

여러분 뭐가 그리 잘났습니까? 

음성 한 번 들었다고 열불 냅니다. 

사람들이 자기 받은 작은 은혜를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하고 엉덩이가 덜썩덜썩 합니다.

 대단한 줄 압니다. 

여러분 왜 그렇게 애들 같고 교만합니까?

 

모세가 40년 긴 세월동안 은혜에 잠깁니다. 

그러고도 모세는 ‘하나님 저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말을 진짜 못할까요? 

애굽 왕자 출신입니다. 

자기를 깨달아서 그런 겁니다. 

나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처음에 은혜를 받으면 남이 어떻다는 등 남이 깨달아집니다. 

나중에는 남들이 안보이고 내가 깨달아집니다. 그 위에 참된 계시가 옵니다. 

제가 영분별 하면서 사람들을 진단 내리는데 그 사람들 무시해서 하는 말들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수년간 깨닫고 깨달아 내린 결과물들입니다. 

참된 진리는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많이 누적되어야 하고 잠잠해야 됩니다. 

그리고 계속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은혜의 세계가 아주 미약하다는 것을 아시고 저 깊은 바다 속으로 계속 들어가야 됩니다. 

1미터 바다를 헤매면서 은혜 받았다고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직 8천9백 미터 바다가 기다립니다.

 

은혜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받은 은혜의 세계에서 계속 더 많이 들어가서 영적인 거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신 목적이 ‘너희는 그렇게 되어라’ 입니다.

 ‘너희만은 되어라’ 입니다. 

각자 쓰임 받는 게 다르지만 12제자 가운데 그나마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며 또한 쓰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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