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365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365절

 

그 분의 얼굴이 예루살렘으로 가시고 있었기에, 그들은 그 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365절 말씀입니다.

‘그 분의 얼굴이’ 예수님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고 있었기에’ 두 제자가 사마리아로 가서 예수님이 머무를 장소와 먹을 장소를 예비하는데, 그 장소를 예비한 겁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머무르게 할려고 오라고 했지만 예수님의 얼굴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 보이는 겁니다. 

아니 이들이 어떻게 말을 안했는데 알까요?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는 길이네’ 생각한 겁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인들로부터 개취급 당하기에 예수님이 유대인이라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도 유대인들이지만 제자들을 보고 머무르게 하려고 영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얼굴을 막상 보니까 아닙니다. 

괴리감입니다. 

예루살렘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막상 우리가 구원을 보면 거부합니다. 신기합니다. 

거듭나고, 성령세례 받고, 성령도 받고, 은사도 받고, 다 합니다. 

교회에서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심지어 목사도 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정점에서는 예수님의 얼굴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그 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퇴짜를 맞은 겁니다. 

제자들이 방을 예비하여 예수님이 오셨는데 사마리아인들이 거부하였습니다. 

이것이 유사기독교입니다. 

종교가 똑같습니다. 

회개도 하고, 방언도 받고, 은사도 받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구원의 정점까지는 못 이르게 합니다. 

마치 구원이 제일 쉬운 줄 압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구원이 일어나며, 십자가를 져야 구원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사람들이 안합니다. 모든 것을 다합니다. 

통일교도 보혈 찬송가를 부릅니다. 

기도도 뜨겁게 합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종교들이 다 같아 보이지만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맨 마지막이 다릅니다. 

그 구원까지는 통과 못시킵니다. 

사마리아도 그리심산에 산당예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인에게 영접이 왜 안되었느냐?

 그들이 영적으로 예수님과 괴리감이 있습니다. 

영접해야 구원이 일어나는데 구원까지는 안 가는 신앙이 사마리아신앙입니다. 

저희교회가 왜 다른 신앙이며 개신교와 다른가? 

명ㅇ교회도 뜨겁게 기도하고 찬송하지만 구원에는 못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참교회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종교이며, 유사기독교는 비슷해 보이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이단은 아예 문 근처도 못가며, 사이비는 아예 딴 종교입니다. 

다 성경 이야기 하고 다 잘해주고 형제자매로 대해주고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지만 우리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이 때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해야 되는데 영접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구약을 통해 회개와 변화의 역사를 통해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원리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나중에 구원받으면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십니다. 이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일어나지만 이 구원의 역사는 안됩니다. 

홍해 이전에 사람들은 다 죽었지만 홍해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구원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는 다릅니다. 

성령의 역사는 구원을 위한 역사입니다. 

모여들고 체험하고 환상보고 성령의 감동 주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기초 작업입니다.

 

영접은 나의 모든 내면까지가 통치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셨으면 안방까지 들어오셔야 됩니다. 

예수님이 길거리에 계시는데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영접이 아닙니다. 

은사 받았다, 응답받았다, 깨달았다, 감동받았다는 영접이 아니며, 내가 온전한 통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까지 가야 합니다. 

신앙은 끝까지 가야 합니다. 

나의 온전한 통치가 끝입니다. 

중간에 통치가 끝나버리면 구원이 안 이루어진 겁니다. 

끝까지 가야 합니다. 

완전한 통치가운데 들어가려면 1년 10년 몇십년 걸립니다. 

죄를 안 짓는 것이 증거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영접이 아니기에 구원을 못 받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가 계시록에 나옵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이 교회가 안 믿는 교회일까요? 

아닙니다. 

잘 믿는 교회입니다. 

자기들은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며 자신 있게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아직 안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잘 믿는다고 착각합니다. 

기도하고, 철야기도, 새벽기도, 특별히 죄를 안 짓고 산다고 하지만 은밀한 죄를 보지 못합니다. 

아직 안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내가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같이 먹고 마시기에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으면 구원이 아닙니다.

 영접되면 죄가 안 일어납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입니다. 

완전한 의의 사람이 됩니다. 

탐심, 욕심이 다 사라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충성하고 헌신합니다. 

하지만 머리 한 쪽에는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욕망! 한 자리 나에게 안 주나, 봉사라도 욕망 때문에 바랍니다. 

영접하면 욕망이 사라지고 욕심이 사라집니다. 

탐심이 사라집니다. 

모든 죄는 욕심과 탐심에서 옵니다. 

물질 욕심. 이성욕심, 영의 욕심이 있는데 이런 모든 욕심이 다 사라져야 영접이 된 겁니다. 

영접의 한계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 믿습니다. 

욕심이 있지만 축복으로 비는 겁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축복이나 간구를 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구원이 아니라, 

욕심이 전혀 없이 기도하는 것이 영접입니다. 

내 안의 내면세계의 욕심이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각 사람 안에 있는 영적인 내면의 방들이 무너져야 됩니다. 

내면의 방들이 욕심입니다. 

인간은 욕심이 있는데 물질, 지위, 형통의 욕심들이 다 허물어져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목사, 전도사, 선교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면세계의 욕심이 다 사라져야만, 예수님이 온전히 나를 지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못 들어오시는 이유가 내 자아가 예수님을 거부하기에 예수님을 영접을 못 합니다. 

자아의 본질이 욕망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천국 가려고! 목적이 있기에 잘못된 이론들을 만들어냅니다. 

이신칭의, 영접이론, 회심이론 등을 만들어내는데 모두 잘못된 이론들입니다.

 

우리 안에 욕심이 다 사라져야 내가 죄를 짓지 아니하고 예수님과 먹고 마시는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살고 예수님은 나를 위해 공생이 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욕심이 있으면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실 수 없습니다.

 영접은 신앙에서 오래 걸립니다. 

문앞에 계시고 문 열고 들어가면 또 안방에 들어가고 이는 일련의 과정들을 계속 나타나서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은 ‘주’라고 하면서 실제 삶은 자신이 주인이 됩니다. 

자신이 열 내고, 힘들어하고, 염려하고, 계획하고, 미워하고, 음란하고 자신이 주인행세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면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평안하고, 기쁘고, 행복하고 또 다른 세계가 주인이 되어 인생을 끌어갑니다. 

영접은 내 육체와 내 정신과 내 영을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서 쓰시는 겁니다. 그런데 주인이 안되는 사람이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이며 유사기독교입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면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모든 것을 누리는 겁니다.

 

여러분! 
사마리아 사람들이 멀리 있다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평생 죄를 짓다가 막판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죄를 지은 것만큼 회복할 수 있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온갖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처럼 되려면 많은 세월이 필요한 것이 영접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맑고 순수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욕심이 없고 마냥 즐겁습니다. 
어른은 욕심이 많으며 남의 것을 뺏으려 합니다. 
가지려고 하고 지배하려고 하고 고집이 많아집니다. 
어린아이는 욕심 가져봤자 천원정도 작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되는 영접사건이 구원인데 구원에 도달되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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