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369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369절

 

그들이 길로 가게 되었으며, 누가 그 분에게 말했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주님!”

누가복음 369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입니다.

 ‘길로 가게 되었으며’ 성경은 왜 뻔한 말을 기록했을까요? 

이것은 좀 큰 길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통행하고 마을과 마을 사이 큰 길을 말할 것입니다. 

‘누가 그 분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과정에서 70명 정도가 옆에 같이 갔는데 그 와중에 수십명이나 수백명 정도가 옆에 붙습니다. 그 중에 누가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찾아온 겁니다.  

옆에 붙어서 말하는 겁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주님!’ 

바른 마음입니다. 

예루살렘에 가시든지 사마리아든지 어디든지 따르겠다고 합니다.

 ‘주님!’ 하는 것을 보면 믿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 너 잘 만났어, 아까 사마리아 사람들은 안되겠던데, 너는 되겠다’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얼마나 어렵냐하면 거듭나고 은혜 받고, 은사 받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마리아 사람들도 안 될 뿐 아니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신앙 위에 내가 어떤 경우든지 당신을 따르겠다는 위대한 믿음도 예수님에게는 달갑지 않습니다.

 

그럼 누가 구원받을까요? 

여러분은 구원이 엄청 어렵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생각할 때 나는 그 교회 잘 다니고 빠진 적 없어, 주님 명령이면 다 할 거야 각오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구원은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통과할 정도가 되어야 됩니다. 

생명을 내어놓을 정도로 되어야 구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물질로도 배우자도 상대도 안되는 자기 생명을 죽일 정도까지 되어야 합니다. 

과거만 핍박받고 산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핍박당합니다. 

핍박 안당하면 가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가 목사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언하고 순종할 때 마귀나 세상이 ‘정말 존경스러워’ 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구약을 이해할 때 ‘사울 왜 저럴까?’ 

싶지만 그 당시로 가면 사울이 위대하게 보일 것입니다. 

다윗이 못된 놈으로 보일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과거를 보기 때문에 알지만 현재 사는 우리는 보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결단해도 인간의 결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또한 인간은 결단한다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는 않습니다. 

내가 정말 결단을 행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겁니다. 

매주 성수주일 하고 싶어도 친구들이 불러내고 또 주일 결혼식, 장례식, 애기가 아프거나 등 무슨 일이 많이 생깁니다. 

우리가 무엇을 결단하면 잘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순종할 때 절대순종을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정말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고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하지만 위기의 상황이나 예측 불허의 앞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은 예측 불가한 일들이 엄청 일어납니다. 

가상의 일들이 없습니다.

 따르는 이 사람은 각오가 대단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데 살 집이 없습니다. 

갈 데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오는 현상들이며 핍박들입니다.

 

저희 교회 나간 사람들이 안 나간 성도들을 끌어내리려고 핍박합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교회 다니면서 이런 일들을 겪어야 되나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나간 자들에게 마귀를 씌우게 하셔서 핍박을 이기는 과정을 보시는 겁니다.

 핍박하는 사람들이 못된 놈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이 다 허락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마귀를 쓰십니다.

 온갖 핍박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는 겁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 당하면서 교회 다녀야 되는가?’ 

목사님 못 믿겠다는 불신을 줄 수 있고 또는 망설임, 포기가 있습니다. 

참교회는 로마시대 때 카타콤으로 순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참교회는 핍박을 당하며 어려움이 옵니다. 

참신앙은 핍박이 옵니다. 

이 구절에서 고백하는 이 사람은 어려움의 한계를 모릅니다. 

그냥 ‘어려워 봤자’ 생각할 것입니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정도로 가야 됩니다. 

북한이 죽자 살자 달려듭니다. 

우리도 천국 가는 과정에서 마귀가 죽자 살자 달려듭니다. 

‘예수님 믿는 게 이렇게 까지 되어야 하나’ 당황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힘들다고 못 다니겠다고 하며 나가면 됩니다.

 

제가 핍박 때문에 힘들어하는 성도들에 대한 각오 없이 목회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언하는 목회자입니다. 

인간을 대변하거나 내 생각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듣기에 기분이 좋겠습니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겠습니까? 

인본주의는 합리적이기에 문제가 안 생깁니다. 

합리적이 바로 마귀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식 바치는 것이 합리적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것이 이성적입니까? 

합리적입니까? 

여러분은 이제까지 인본적으로 살았기에 신본이 이해가 안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이해가 안됩니다. 

저는 수많은 안수경험이 있습니다. 

안수를 통해 하나님의 감동을 전합니다. 

못 믿겠으면 나가면 됩니다. 

처음에는 믿고 왔다가 마귀의 시험에 빠져 불신에 잘 빠집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각오해야 합니다. 

선택에 대한 결과는 나중에 주어집니다. 

신앙생활 할 때 우리에게는 최악의 상황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극복할 영적 준비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선지자들이 순교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겁니다. 

거기에 왜 겁날까요? 

각오가 안되기에 겁나는 겁니다. 

북한과 싸우는데 무서워하면 지는 겁니다. 

나간 자들이 성도들을 괴롭힐까봐 겁나면 나가면 됩니다. 

저는 처음에 12명을 인도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며 숫자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된 신앙인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깟 돈에, 인정에, 남의 풍문에 좌우되는 사람들 원치 않습니다. 

좌우되는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저는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 말을 안 듣습니다. 

잠깐 제 말을 안 듣는 것은 없습니다. 절대 신뢰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예수 믿다가 잠깐 속았습니다’ 그런 것 없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당신을 따르겠다고 한 이 사람도 버림받고 지옥에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많은 예수님의 표적을 보았고 많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안됩니다. 

여러분들도 제 설교 많이 듣고 칼럼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안됩니다. 

극한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동의나 은혜롭다고 오시면 안됩니다. 

천국 가기 위해서는 구비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에베소서에 투구와 흉배와 칼과 신발과 허리띠와 완전하게 구비한 자가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어디 빈틈이 있으면 천국 못 갑니다. 

마귀 이기려면 완전무장으로 빈틈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쉽게 천국 갈 수 있다고 천국을 우습게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완전히 개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천국갈 수 있습니다. 

좀 개조되었다고 갈 수 없습니다.

 온전한 회개만이 천국 조건이며, 온전한 회개만이 완전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완전하게 거할 때 천국 가는데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하시고 또한 근신과 금식으로 나아가게도 하십니다. 

그러면서 회개하다 보면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과정을 완전히 통과해야만 마귀가 공격을 하지 않으며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악어는 나뭇가지로 입안에 넣으면 입을 못 다뭅니다. 

악어도 틈이 있습니다. 

뱀도 틈이 있는데 목을 조르면 힘을 못 씁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틈이 없어야 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완전한 과정으로 가야되는데 중간에 안되면 떨어져 나갑니다. 

천국은 비록 연약하다 할지라도 계속 영적 무장으로 온전함을 이루면 마귀가 우리를 이길 수 있는 틈이 없기에 힘을 잃어버립니다. 

마귀가 뜨면 나중에 진짜가 남습니다.

 

온전한 믿음위에 온전한 신앙이 옵니다. 
믿어야 됩니다. 
조금이라도 의심 들어가면 끝납니다. 표적을 향해서 눈이 가야 되는데 조금이라도 딴 곳으로 눈이 돌아가면 못 맞춥니다. 
의심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가는 겁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해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구원받기 위해 얼마나 애쓰며 나아가는지 모릅니다. 
보통 목사들은 대충합니다. 
신앙은 오직 집중해야 합니다. 
잠시 딴 생각하면 명중을 못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선수촌에 가면 금메달 따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합니다. 
하물며 영원한 천국 면류관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우리 교회 와서 갈등하고 불신하는 정신세계 가지고는 천국 못 갑니다. 
본문에 이 사람도 따르고자 하는 결단으로 왔지만 지옥 갔습니다. 
그 마음 이상으로 가야 되는데 ‘좋아지겠지, 은혜받겠지, 목사님 말씀 맞겠지’ 그러면 구원근처도 못 갑니다. 
완전한 결단과 온전한 회개, 완전한 헌신과 믿음으로 나아갈 때 그 때 비로소 명중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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