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05절강해


사복음교회👈홈피사이트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05절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며 그리로 왔다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다.

 나아와, 올리브와 포도주를 붓고, 그의 상처들을 싸매었다. 

그를 자기 짐승에 태워, 그를 여관으로 데리고 갔으며, 그를 돌보아 주었다.

누가복음 405절 말씀입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제사장과 레위인은 동네 사람입니다. 

지금 여기 지역이 안 나와 있지만 유대지역일 수 있습니다. 

종교심이 좀 강한 지역입니다. 

유대지역에서 좀 떨어진 곳이 여리고인데 유대지역에 상층부, 높은 지역입니다. 

여리고는 사마리아와 유대 중간지역입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며’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이 봤을 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에 있지만 옛날 앗시리아에 멸망당하여 정책적으로 혼혈이 일어납니다. 

구원을 잃어버린 불신자로 취급받습니다. 

정통 유대교에서 ‘사마리아는 구원이 없어. 신앙이 없어. 지옥 가! 우리가 볼 때 아랍 즉 시리아, 모압, 암몬과 다를 바 없어’ 하며 불신자 취급합니다. 

개와 돼지로 보며 인정을 안합니다. 

유대와 갈릴리 사이에 사마리아가 있는데 유대와 갈릴리를 오갈 데 가운데 사마리아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빙 돌아서 갑니다. 

부정한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확실한 제사장과 레위인이 아닌 또 다른 제 3자가 등장하는데 누가봐도 구원받지 못한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갑니다.

 

‘여행하며 그리로 왔다가, 그를 보고’ 여행하며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겼다’ 연민입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불쌍히 여기는 자들은 복 있으니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씀이 산상수훈 말씀에 있습니다. 

천국 가는 자들의 마음입니다. 

천국가는 마음은 원수를, 고통 받는 자를, 또는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누가 천국 가느냐?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들입니다. 

이 긍휼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받았느냐?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 구원받는 겁니다. 

구원받을 근거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잘한 것 나은 것 훌륭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내가 복음을 깨닫게 해서 구원받게 해주시고 은혜 받게 하시고 동시에 하나님의 공급 통로로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나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은혜입니다. 

설교는 어떻게 합니까? 

은혜로 하는 것이며, 기도도 은혜로 하는 것이며 교회도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다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공급해주셔서 채워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교회가 인터넷교회도 그렇고 은혜로 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전적인 은혜며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구원받는 것, 성화되는 것 다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웃을 아가페로 하느냐?

 아가페를 받은 자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가페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절대 다른 영혼에 대한 긍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래는 있지만 긍휼은 없습니다. 

긍휼은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고 사랑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가페를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면 우리는 아가페를 소유하게 됩니다. 

내가 구원받으면 반드시 남을 구원하는 힘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자동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공존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그와 같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존재하기에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이웃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깁니다. 

교회성도들이 올 때 육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부유하고 잘생기고 다 있습니다. 

영적인 사랑입니다. 

강도는 마귀를 의미하며 강도 맞은 사람에게 영적인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웃사랑의 대가라고 불쌍하다고 돈을 주는 것이 이웃사랑이 아닙니다. 

내용은 있을 수 있지만 본질이 아닙니다. 

영적인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마귀에게 두들겨 맞아 죽어가니까 불쌍한 겁니다.

 

‘나아와’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올리브와 포도주를 붓고’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올리브 즉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영적으로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이나 불신자한테 성령의 은혜로 나아가는 겁니다. 

이 은혜는 치료를 주기도 합니다. 

신유는 자동입니다. 

구원받으면 자동으로 손 얹으면 낫습니다. 

올리브를 붓습니다. 

성령의 은혜입니다. 

치료가 임하기도 하고, 마음의 위로가 임하고, 고통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죄사함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는 겁니다.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고 죄사함의 눈물이 시작됩니다. 

구원이 시작되는 겁니다. 

우리의 죄는 피처럼 붉습니다. 

모든 피는 죄를 상징합니다. 

포도주는 죄를 씻는 보혈을 상징합니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보혈의 복음을 전파해서 죄를 사함 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때 영혼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어떤 분은 고통가운데 살아 처음에는 슬프고 아주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지만 회개하시더니 은혜가 충만해지고 얼굴이 꽃처럼 피었습니다. 

성령의 은혜와 포도주가 부어진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와 포도주가 부어지면 평안과 기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의 상처들을 싸매었다’ 상처는 마귀가 그를 찔러버린 것입니다. 

인생이 망하고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마귀가 그를 찔러버린 것입니다. 

인생에 죄를 짓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그 상처는 그가 죽임당한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은 음란으로 구원을 잃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으로, 불평불만으로, 미움으로, 자랑으로, 탐심으로 구원을 잃어버립니다. 

마귀가 찔러 시험을 준 내용으로 상처를 받은 것들을 슬슬 회복시키는 겁니다. 

우리는 영이 갑자기 좋아지지 않습니다. 

너 예수 믿어! 아멘 구원입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구원회복이 1년 걸립니다. 

초단기간에 구원은 잃어버립니다. 

상처는 약 바른다고 바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약 1주일정도이며, 심한 2도 화상은 3년 걸립니다. 

영적인 상처도 마귀에게 당한 이 상처는 내가 한 번 울었다고 아물지 않습니다. 

회복되지 않습니다. 

계속 은혜를 받는 겁니다. 

왜 미끄러지느냐? 

올리브유 한 번 붓고 포도주 한 번 붓고는 넌 천국이야 손을 놓아버림으로 지옥 가는 겁니다. 

여러분 당장 죽어가는 사람에게 한번 포도주 붓는다고 살아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경과되어야 합니다. 

상처를 싸매주고 점점 회복단계로 들어갑니다.

 

‘그를 자기 짐승에 태워’ 짐승은 내가 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누리고 있는 내 영광을 말합니다. 

좀 작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귀를 탑니다. 

좀 나은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말을 탑니다. 

좀 더 낫습니다. 

어떤 이는 황금마차를 탑니다. 

왕들이 탑니다. 

내가 누릴 영광을 공유하는 겁니다. 

사람을 인도하려면 내 영광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가 누릴 영광은 내 돈입니다. 

내 영광을 같이 나누는 겁니다. 

내 짐승을 태워주고 어떤 자리에 오르는 겁니다.

 

‘그를 여관으로 데리고 갔으며’ 여관은 참된 교회를 말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비유를 드십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꼭 그런 비유가 아니더라도 그런 의미라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낫습니까? 

낫지 않습니다. 

교회를 떠나서 심방 간다고 영이 좋아집니까?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 참 많습니다. 

교회를 떠나서 가정집에서 사역하는 것, 심방 사역은 구원을 못 이룹니다. 

반드시 여관처럼 방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내가 회복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당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당은 우리가 천국에 가는 과정에서 가는 처소입니다. 

나만의 처소입니다. 

교회당 예배당은 하드웨어며 안에 있는 성전은 소프트웨어입니다. 

교회당은 천국 가는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며 이 교회당에서 참된 예배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배당이 중요하기에 예배당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작아도 가서 예배드리면 감동이 임하고 은혜가 임합니다.

 

저도 저희교회 예배당을 사랑합니다. 가서 예배드리면 마음에 감동이 임하고 은혜가 임합니다.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안에는 예배가 살아있고 보고 싶은 성도님들이 있고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일반 집에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예배당은 우리가 천국에 가기 전 잠깐 머무는 장소입니다. 

우리 집은 천국에 가기 전 잠시 머무는 장소입니다. 

교회당은 천국이라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전, 궁궐에 들어갈 수 있는 잠깐 머무는 여관입니다. 

우리는 교회당이라는 예배당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곳입니다.

 

‘그를 돌보아 주었다’ 이 사람은 누가 없으면 안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천국에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헬퍼가 필요합니다. 

목사나, 전도사, 선교사, 직분자, 성도 일 수 있습니다. 

절대 혼자 못 삽니다. 

사람 인 (人) 혼자 못서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혼자 못 삽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혼자 교회를 인도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적어도 두 세 사람 이상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혼자 서지 못합니다. 

혼자 예배드린다고요? 

할 수 있지만 성령의 임재는 약합니다. 그리고 죽어갑니다. 

석탄도 옆에 달라붙어야 합니다. 

혼자서는 서서히 꺼집니다. 

그렇다고 돌보아준다고 공급자입니까? 목사는 성도를 도움으로 도로 힘을 얻습니다. 

추운 날 산속에서 두 사람이 걷다가 어떤 사람이 도저히 못 걸어가게 되니까 다른 사람이 업고 산을 넘어 갑니다.

 업은 사람이 공급자입니까 안 업으면 추워서 얼어 죽습니다. 

업으면 열이 납니다. 

열 때문에 따뜻해져서 업힌 사람이 살아나고 업은 사람도 살아나는 겁니다. 둘 다 공급자입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가르치면서 인도하면서 더 의로워지는 겁니다. 

목사는 상대방을 어떻게 인도해야 되기에 내가 더 정신을 차리는 겁니다. 

영적으로 공생입니다. 

영적으로 공존하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인도할 때 절대 교만하면 안됩니다. 

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중환자들이 오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오므로써 나한테 기도 받고 말씀 듣고 하면서 나도 의미가 있기에 열심히 하는 겁니다. 그 때 가르친 것들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많이 제공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돌보아 줄 때 절대 교만하면 안됩니다. 

상대방이 쓰러져서 내가 업고 가므로 내가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내가 사는 것입니다. 

기도에 중보대상자가 있습니다.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삽니다. 

다 선한 사람이면 기도할 것이 없어서 다 죽습니다. 

눈보라가 있을 때 다른 영혼을 중보하고 인도하는 과정에서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이 사람은 남을 돌보는 과정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추억에 남을 겁니다. 

가장 좋은 추억이 여행 갔던 장소들, 물건 샀던 내용들 집을 얻은 내용들 차 바꾼 내용들 놀면서 막걸리 마시면서 얻은 내용들이 아닙니다.

 

다른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면서 고통당했던 추억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됩니다. 

영적인 추억이 아름다운 겁니다. 

영적인 추억들을 남기십시오.  

내가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피소드, 많은 어려움, 고통당하는 내용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 것입니다. 

영적인 추억가운데 아픔도 있고 고통도 있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인생은 한 번 지나갑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한 번 있는 인생 어떤 추억을 남기겠습니까? 

여행이라는 추억을 남기겠습니까? 

진정된 추억을 원하십니까? 

우리는 진정된 추억을 남겨야 합니다. 그깟 흘러가는 얻는 추억 남기지 마시고 그리스도께 인도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우리 마음에 많이 남아야 됩니다.

 

한 사람에게 1억 들어간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깝지 않습니다. 

왜 그것 때문에 제가 있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성경을 많이 연구했거든요. 

인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애환들이 있지만 자양분이 되는 겁니다. 

영혼을 구령하는 것이 아가페기에 하나님 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말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사는 마음이 진정한 긍휼이 됩니다. 

그렇게 한 내용이 출세와 성공, 이 땅의 행복보다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 부어집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을 주는 겁니다. 

행복을 원하십니까? 

행복을 추구하지 마시고 아가페를 추구하십시오. 

그것이 행복을 얻는 길입니다. 

마치겠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8장484절강해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1장5절 강해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1장3절 강해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 (죄사함의조건:회개)1장4절 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8장463절강해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 1장6절 강해

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4장150절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