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헬라어 번역성경 누가복음(죄사함의조건:회개)7장444절강해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누가복음 444절

 

만,약 네 온몸이 밝고, 어떤 어두운 부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등불이 번개로 너를 비추는 때같이, 온전히 밝을 것이다.“

누가복음 444절 말씀입니다.

‘만약 네 온몸이 밝고’ 온몸은 육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용어는 우리 용어와 다릅니다. 

온몸은 우리의 마음의 방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체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안하십니다. 

‘성령이 계시더라’ 표현도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입니다. 

온몸은 우리 마음입니다. 

마음의 방은 꽤 넓습니다. 

온 몸은 우리 마음전체를 의미합니다. ‘어떤 어두운 부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 마음에 수천 개의 방이 있는데 어두운 부분도 있습니다. 

마치 아파트 방처럼 있습니다. 

마음의 방을 몇 십번을 꿈에서 보았습니다. 

마음이 공간처럼 있습니다. 

마음에 방들이 보입니다. 

자연계처럼 또 하나의 세계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어둔 방도 있고 그 안에 귀신도 살고, 큰 방은 큰 귀신도 살고 작은 방도 있습니다. 

귀신이 크면 큰 방에서 삽니다. 

귀신이 사는 방은 호화롭습니다. 

큰 집에서 삽니다. 

반대로 밝은 방은 아주 밝은데 투명합니다. 

우리 안에 귀신이 사는 방은 어둡습니다. 

깜깜한 방입니다. 

축사를 통해 귀신 방이 밝아지면 귀신은 하애져서 나갑니다. 

귀신은 오래되고 큰 것일수록 어둡고 큽니다. 

마음이 밝을수록 귀신의 방은 작아집니다. 

어둠이 많이 나가면 방이 전체로 밝은 집들로 가득 차게 되고 귀신이 드러납니다. 

반대로 귀신이 많아지면 귀신이 있는 집은 커지고 아주 짙어지고 아주 깜깜해지고 귀신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는 데 성령님이 계시면 방 전체가 밝아지는 것처럼 어둠이 꽉 차게 됩니다.

 

‘어떤 어두운 부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런 경우가 생기지 않습니다. 

인간은 죄를 짓기에 우리 마음이 완전히 밝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는 약간 어두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방들이 얼만큼 점령되느냐 입니다. 

정말 우리가 우리 안에 귀신이 결박되고 추방되면 죄를 짓지 않는 완전회개상태가 된다면 ‘등불이 번개로 너를 비추는 때같이’ 거의 드문 경우입니다. 

회개하면 등불이 됩니다. 

하나님께 밝게 비추는 삶을 살게 됩니다. 

번개는 푸른색이 약간 돕니다. 

번쩍하면서 주변이 아주 확 밝아집니다. 

번개빛이 워낙 강해서 주변이 어둠이 물러가면서 확 밝아집니다. 

번개가 치는 것처럼 거의 순간적으로 밤인데도 사물이 인식되고 순간적으로 대낮이 됩니다. 

어둠이 없다면 얼만큼 밝아지느냐? 

촛불이 등불이 밝아봤자 1미터 3미터 정도 밖에 안됩니다. 

깜깜한 날, 달도 안 떤 비가 오는 앞도 안 보이는 날 번개가 치는 순간 갑자기 안보이던 마을이 다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가 강해지면 밝아지면 내 주변에 1미터 3미터 정도 밖에 밝게 해줄 수밖에 없는 반경에서 온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합니다.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니느웨 백성처럼 스바여왕처럼 온전히 회개되면 쓸데없이 표적 구하지 말고 병하나 고친 것 가지고 보러오지 말고, 진짜 회개생활로 들어간다면 작게는 등불처럼 작지만 너희 진짜 영적으로 강해지면 강한 하나님의 빛을 낼 거라는 것입니다. 

회개깊이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나만 구원받을 정도의 회개는 등불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회개시킬 정도면 번개불입니다. 

선지자입니다. 

다른 사람을 회개로 변화시킬 강력한 회개를 일으킵니다.

 

저는 새벽에 몇 시간 방언기도하고 나오는 날 온 세상이 내 것 같다는 기쁨이 충만한데 목사님은 저를 볼 때 형편없다고 하십니다. 

어느 날 아침에 기도를 못하고 눈물로 차안에서 30분간 흘리고 회개도 덜 된 것 같은데 얼굴은 초체한데 임목사님은 ‘오늘 왜 이리 예뻐’ 하고 칭찬하십니다. 

그 때 제가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방언기도 많이 하면 충만하고 어둠이 없는 줄 압니다. 

방언기도는 벌레 귀신만 쫓아내고 짐승귀신은 못 쫓아냅니다. 

사람귀신은 더 못 쫓아냅니다. 

회개는 30분만 회개해도 벌레나 짐승귀신 나가고 영적으로 상당히 밝아집니다. 

예수님은 ‘내가 귀신을 쫓아낸 것 가지고 구경하러 오느냐?’ 

이것이 작은 것이며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죄인인 니느웨 사람들, 스바여인이 와서 회개한 것입니다. 

요나가 회개했습니다. 

회개가 훨씬 강력한 빛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가 밝아지게 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면 나 자신이 등불처럼 작은 불이지만 번개불이 떨어지는 강력한 불이 오는 것입니다. 

회개가 답입니다. 

온통 방언 천지입니다. 

개굴개굴합니다. 

방언 많이 하다보니 스스로 통변도 만들고 스스로 예언도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는데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만듭니다. 

엉뚱한 것 천지입니다. 

퇴마기도로 축사기도로 속입니다. 

그런 어둠의 일들이 꽉 찬 것이 기독교입니다. 

여러분의 눈이 어두워서 무엇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릅니다. 

온 세상이 미혹되었습니다. 

은사가 미혹되었습니다. 

거짓된 예언, 거짓된 축사, 거짓된 통변, 거짓된 성령이 충만한 세상이 오늘날 세상입니다.

 

여러분 빛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빛이 될수록 하나님 앞에 처참함을 깨닫게 되고 부족함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부족해서 얼굴을 못 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희 교회는 빛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내면세계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밝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빛이 오면 각자각자 하나님앞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가까이 오시면 무너집니다. 

눈물밖에 안 납니다. 

부끄러워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못 듭니다. 

이것이 빛의 세계입니다. 

빛의 세계라는 것이 예언해줄게 하며 엉뚱한 예언이나 하고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어둡고 비참해서 고개를 못 드는 것이 빛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은 오염되어 이상한 오순절을 좋아합니다. 

방언 한다구요? 

은사 있다구요? 

그런 것들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표적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회개가 주는 것입니다. 

어떤 세계가 일어나느냐?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설교도 부끄럽고 찬양도 부끄럽습니다. 

하나님 앞에 뻔뻔스럽게 가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초기 신앙인은 초라했습니다. 

새벽에 많이 우니까 모습이 초라했습니다. 

80년대부터 구원받았다고 선포하며 좋아합니다. 

빛이 무엇인지 어둠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지금 오순절이 온 세상을 장악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신령하다고 보는데 신령하지 않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좀 나은 교회입니다. 

에베소교회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신령하지 않은 교회가 전 세계를 장악합니다. 

방언파들은 음란 교만 죄들을 못 이깁니다. 

이런 교회가 신령하다고 따라갑니다. 고린도교회를 따라갑니다. 

우리나라 처음 기독교는 좋았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신실한 장로교인이었습니다. 

신실할 때는 죄와 멀어집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가 오염되어 이상한 놈들한테 잡혀 은사집회를 하고 있으니 정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촛불도 아닌 어둠의 쓰레기입니다. 

어둠을 장악한 사람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닙니다. 

요즘 대한민국의 부흥사들은 쓰레기입니다.

 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울게 하는 부흥사가 진짜입니다. 

저희 어릴 때는 울게 하는 부흥사들만 있었습니다. 

그깟 은사 몇 개 들고 들어와 신사도를 만듭니다. 

설사 신령한 은사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하수입니다. 

저는 예언 통변 신유축사 영분별 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것들은 회개보다 100배 못합니다. 

이런 은사들보다 천배 나은 것입니다. 이런 은사들을 자랑하면 안됩니다. 

신앙세계는 오직 회개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회개가 터집니다.

 

저희 교회가 다른 교회와 다른 점이 예배 때문에 회개가 터집니다. 

저는 안수 때도 예언 통변보다 죄를 지적합니다. 

죄를 지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본질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많고 죄가 많고 안타까운 것이 많습니다. 

통변과 예언 등 잘못된 은사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다 지옥가게 만듭니다. 

신앙은 어려운 겁니다. 

저도 신앙을 잘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해도 해도 안되는 게 신앙입니다. 

‘됐다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 

신앙은 설 수 없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섰다는 것은 없습니다. 

‘나는 서 있을 수 없고, 온전할 수 없고, 나는 도저히 안되는구나’ 깨닫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직분을 주면 자기가 대단한 줄 압니다. 

직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내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날 도와달라고 매어달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를 보면 가장 높은 사람이지만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 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내가 영계를 다 보는 사람이야’ 교만해질 것입니다. 

다윗은 영계를 다 보고 과거를 초월한 사람입니다. 

깊은 단계입니다. 

그런데도 매일 도와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의 부족과 연약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입니다. 

빛이 강할수록 우리는 내려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왜요? 부족하니까 하나님과 우리는 비교가 안됩니다. 

천국 가면 하나님 앞에 고개가 숙여줘서 고개를 못 듭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이마가 땅에 닿다입니다. 

예수님 오시면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서 고개를 바닥에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즐거운 주일예배시간입니다. 

할렐루야 하고 뻣뻣합니다. 

설교를 듣건 기도를 하건 찬양을 드리건 어쩔 수 없이 경건함에 빠집니다. 왜?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앞에 조아립니다. 

예배는 하나님앞에 부끄러워서 엎드러지고 회개가 터지고 은혜가 터지고 한참 낮아집니다. 

그게 빛입니다. 

빛이 강할수록 내가 쪼다가 되고 한심하게 됩니다. 

부끄럽게 됩니다. 

나에 대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나를 티끌이라 부르고 벌레라 부릅니다.

 

여러분이 빛이 되고 강할수록 나에 대한 것이 점점 약해지고 점점 겸손하게 됩니다. 

반대로 어둠이 강할수록 교만해져 목사말을 우습게봅니다. 

신전도사님이 환상가운데 떨어지는 것을 말해도 귀담아 듣지 않고 가버립니다. 

우리가 빛의 세계에 들어오면 우리 빛이 전 세계를 비춥니다. 

정말 우리 마음판에 어둠이 전혀 없고 빛이 온 세상을 비춥니다. 

이사야처럼, 에스겔처럼, 예레미야처럼 비추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회개의 길이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나만이 아니라 많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많은 영혼들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 회개의 길이기에 우리는 회개산에 올라가는 겁니다. 

시내산입니다. 

회개산은 우리를 밝게 만들어주고 온 세상을 밝게 만들어주는 산이기에 산에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회개산에 높이 올라갈수록 빛은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드디어 올라서면 마을을 비추고 국가를 비추고 세계를 비추는 것입니다. 

높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작을수록 회개산 밑에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회개산에 높이 올라갔습니다. 

엘리야도 회개산에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시대를 비추는 겁니다. 

‘여러분 시대를 비추십시오’ 

안 외쳐도 됩니다. 

회개가 깊어지면 회개의 산에 높이 올라가서 모세와 엘리야처럼 큰 시대적으로 빛을 비추는 겁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회개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금 눈물 흘렸다고 조금 은혜 받았다고 깔짝 되지 마십시오. 

은혜 며칠 좀 받았다고, 말씀 조금 깨달았다고 흥에 취해 교만해지면 안됩니다. 

회개산에 올라가면 하나님앞에 고개를 못 든다니까요.

 

제가 교회를 시작하고 ‘내가 깨달은 말씀 들어봐’가 아니라 반대입니다. 

못한다니까 하나님이 나를 잡아서 쓴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누구를 인도 못해요 

혼자 천국 갈께요’ 붙잡혀서 하게 되니까 도저히 길이 없는 겁니다. 

제가 절강해 할 때 깨달은 것 얼마나 많고 본 것 얼마나 많은데 교만하게 하는 줄 아십니까? 

부끄럽습니다. 

마태복음 구독자가 3명이었을 때 내 것을 세 명이나 보다니 너무 행복했습니다. 

또 부끄럽습니다. 

블로그에 30명이나 들어올 때도 부끄러웠습니다. 

조금 받은 지식과 은혜로 깨달은 말씀으로 깔짝 되지 마세요.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알량한 지식으로 함부로 나대지 마십시오.

 

우리는 깊이 들어가야 됩니다. 
금 파는데 1미터 들어간 다음에 금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금맥은 일반적으로 50미터 들어가야 발견됩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깊이 들어가야 됩니다. 
빛의 원형이신 주님을 만날 때까지 가야 됩니다. 
부산에 누구를 만나러 가야 되는데 중도에 돌아오면 못 만난거며 만났다고 하지 않습니다.
직접 만나야 만난 겁니다. 
하나님을 영으로 직접 만날 때까지 가야 됩니다. 
그래야 구원이 일어납니다. 
신전도사님의 환상에서 깨밭에서 추수하고 하늘의 물이 있고 무지개가 비추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구원을 많이 받는다는 내용들입니다. 
구원을 받는 과정에서 회개가 따라오는데 구원에 다다르는 회개시점이 있습니다. 
구원이 통과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적 내면세계는 아주 밝아집니다. 
영적인 내면세계는 밝아서 기쁜 것입니다. 
구원을 못 받으면 마음속에는 항상 깊은 내면속에 깊은 어둠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다음에도 더 깊은 회개로 들어가 지금처럼 ‘번개가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완벽한 강력한 빛으로 채워져서 온 세상을 구원하고 이 시대를 구원하는 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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